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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물같이 바람같이 > 서상욱의 주역 산책
석가모니도 중요시한 '인(仁)'
서상욱의 주역산책<26> 천택리괘와 역사의 사례
사람을 대할 때 온화하고 관대해야 '멋진 사람'
 
서상욱
이상하게도 중국의 역사를 보면,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이러한 도가의 인물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천하가 다시 안정이 되면, 이번에는 유가의 인물이 나타나 ‘치국평천하’의 도리를 펼친다. 요즈음 우리 정치에서도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공을 바탕으로 ‘치국’을 위한 자리를 탐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무수히 본다. 그야말로 예의와 겸양의 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공자가 말한 인의 핵심은 역시 ‘충(忠)’과 ‘서(恕)’이다. 충이란 아랫사람이 일방적으로 윗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충은 성실이라는 의미이다. 서는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석가모니도 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브라만어를 중국어로 음역한 것이다. 석가는 ‘능인(能仁)’이라는 뜻이고 모니는 ‘적묵(寂黙)’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석가모니는 ‘묵묵히 인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인들의 생각은 모두 같다. 재미있는 것은 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젊었지만,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대부분 스승보다 나이가 많았다. 내가 생각해보니 두 성인이 가르치는 방법이 달랐던 것이다. 공자는 현실의 도리를 알아듣기 쉽게 가르쳤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에는 시공을 넘는 난해함이 대부분이다. 

잘 모를 때는 불교의 가르침이 좀 허황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가 있어서 《능엄경(楞嚴經)》을 공부한 다음부터 불교의 교리를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이 나 같은 아둔패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모두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필자와 같은 수다쟁이를 아주 싫어한 것 같다. 역시 이인편에서 “옛사람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행동의 뒷받침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遞也)”라고 했다. 또 이인편을 더욱 자세히 풀이한 헌문편에서는 “군자가 함부로 말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키려고 지나친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君子恥其言而過其行)”라고 했다. 들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헌문편의 주인공 헌(憲)은 이름이 원헌(袁憲)이다. 이 사람은 평생을 공자의 총무부장 노릇을 했던 사람이니, 아마도 허드레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성실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공자가 죽은 후에 원헌은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살면서 반쯤은 유협과 같은 생활을 했다. 사마천도 《사기 유협열전》에 공자의 제자 가운데 원헌과 계차(季次)를 넣어서 그들의 고결한 모습을 칭찬했다.  

사마천은 고대의 유협이 자기가 한 말을 천금과 같이 여기고, 벗과의 의리를 중시하면서 약자를 도왔기 때문에, 도덕, 정치, 법률로 해결하지 못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주먹이 최고’라고 생각한 것으로 봤다. 유협열전을 쓸 때 사마천은 한비자가 한 말을 가장 의식한 것 같다. 한비자가 “유학자는 글로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유협은 무력으로 금령을 무시한다( 儒以文亂法, 而俠以武犯禁)”라고 했기 때문이다.

원헌에 관해서 좀 더 말하겠다. 은퇴한 원헌이 그리웠던 자공(子貢)이 멋들어진 차림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너덜거리는 옷을 입고 세수도 하지 않은 친구를 본 자공이 이렇게 말했다.“너 어디 아프냐? 살기는 힘들지 않니? 내가 좀 살만하니 도와주랴?” “음~ 재산이 없는 놈은 가난한 놈이고, 도를 배우고도 실천을 하지 않는 놈을 병든 놈이라한다네. 난 가난한 놈이지 병든 놈은 아니야!” 자공은 친구로부터 심하게 꾸중을 듣고 창피해서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공자의 교육방법과 사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박하고 실질적이었던 그의 가르침이 후대에 교조적으로 변하면서 역사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기고 했지만, 그것은 공자의 책임이 아니라, 공자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의 초라한 생각을 빛내기 위한 사람들의 잘못이다. 

감히 한 말씀 더 한다. 《논어》를 보면서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절반은 인자이다. 어디에서 공자님과 같은 스승을 보지 못했소? 수다쟁이답게 예에 대한 또 다른 경우를 설명하겠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에는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 세력가의 문객이었던 그는 용기와 지략을 갖춘 사람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웃의 강국인 진(秦)의 왕은 조나라의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옥에 탐을 냈다. 조왕은 진왕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인상여를 사신으로 파견하여 화씨벽을 진왕에게 바치게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진왕의 욕심을 물리치고 화씨벽은 조나라로 돌아왔다. 조왕은 인상여를 상대부로 봉했다.  또 한 번은 진왕이 조왕에게 민지(澠池)로 와서 맹약을 맺자고 했다. 인상여도 조왕을 따라갔다. 조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진왕은 조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여 모욕을 주었다. 인상여는 즉시 진왕도 장구를 치게 하여 조왕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 

그 후 조왕은 인상여를 상상(上相)에 임명하여 노장 염파(廉頗)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 불만을 품은 염파는 불만이 많아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상여를 씹었다. 그는 언젠가 인상여를 만나면 그에게 모욕을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다. 인상여는 늘 염파를 피해 다녔다. 

수하 사람들이 모두 그가 담이 작다고 비난하였다. 인상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진왕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안다. 강대국인 진나라가 조나라를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조나라에 나와 염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 ” 인상여의 이러한 당당함에 감동을 받은 염파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등에 가시나무를 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고 지냈다. 

예란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울어난다. 리괘에는 ‘리도탄탄 유인정길’이라 하였다.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는 당당하고 관대해야 한다. 누구나 근심하지 않고 살고 싶다.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고 세상을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근심도 없어진다. 심장에 협착증이 있는 사람은 늘 심리적으로 긴장상태에 있으므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돌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가면 대뇌와 신경이 고도로 흥분되어 신경이 긴장되고 혈관이 수축되어 혈압이 올라가거나 위장에 경련이 일어난다. 또 소화액의 분비가 억제되어 두통, 위통, 불면증, 식욕부진 등의 증상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에서도 심장에 협착증이 있으면 종종 생각이 뒤엉키는 사태가 발생한다. 

인상여가 관대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서로 다른 것을 널리 포용하는 관용과 사람들을 온화하게 대하는 것, 그리고 열린 생각을 하는 것은 건강에 좋다. 열린 생각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예출어정(禮出於情) 즉 예는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하면 대뇌와 신경계통에 자극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져서 건강도 따라서 좋아진다. 

마음이 넓어지려면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1) 대국적인 측면을 중요시하고 가능하면 개인적인 득실은 따지지 말아야 한다. 2) 다른 사람을 관대하게 용서해야 한다. 관대하게 용서를 하는 것은 비겁하거나 유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건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3) 오해가 있으면 반드시 풀어야 한다. 즐거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적당하게 양보를 하여 오해를 푸는 것이 서로 화해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4) 충돌을 적당히 피해야 한다. 옳지 않은 충돌은 자기가 먼저 적당히 피하고 나중에 다시 처리하는 것이 좋다.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는 갑남을녀를 막론하고 사람을 대할 때 온화하고 관대해야 멋진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는다고 했다. [서상욱 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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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18 [08:59]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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