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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민주화 세력, '상보적' 역할
<환타임스 창간기획>'국민통합'길을 묻다<11>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민주화의 갈등과 의존구조'(하)
 
김세중
6. 박정희 통치의 종언과 민주주의체제 전환의 계기로서 민주화 세력의 도전

군부 권위주의 지배체제는 압축 산업화를 통해 성숙된 근대 국민국가의 틀과 장기지속 민주주의의 기초를 쌓았다. 이는 민주운동 사관의 단순성과 그 역사관 이 뒷받침된 민주화 세력의 한계를 분명히 노출시킨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운동 세력은 또 다른 차원에서는 군부 권위주의체제의 한계를 보완하여 역사발전에 기여하게 되고 통합의 역사 인식은 이점에도 주목한다.

박정희 군부 권위주의체제의 한계는 무엇보다 암살이라는 형식을 통해 박정희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다는 사실로 극명하게 표출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유신체제는 민주주의 원칙이 제도적 수준에서까지 무시된 한국 현대사의 이질적 시기였고 대항세력의 통제를 위해 거의 항시적으로 국가폭력이 동원된다. 그러나 유신국가는 폭력국가와 함께 발전국가 그리고 안보국가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유신체제하에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중화학공업의 강력하고 일관된 추진은 한국사회를 명실상부한 산업사회로 탈바꿈시킨다. 아울러 일인당 1,000불 소득, 100억불 수출이라는 당시로는 환상에 가까운 목표를 유신국가는 계획보다 앞질러 달성한다. 동시에 유신체제를 도입할 무렵, 철군 등 미국의 정책 변화로 커다란 안보위기 상황이 야기되었고, 그것의 극복은 유신체제의 또 다른 최우선 과제였다.
 
유신국가는 자주국방의 기치하에 중화학공업화, 율곡사업 등의 추진으로 이에 대비 한다. 유신국가의 이런 다차원적인 면모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내재화하게 되는 중산층의 유신체제의 폭력성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고 그들로부터 적지 않은 지지를 도출해낼 수 있게 했던 요인이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군부 권위주의하의 압축 성장에 힘입어 중산층은 한국사회 계층구조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유신 후반기에 접어들며 체제유지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첫째, 비상식적 형태의 대통령 선거의 거듭된 실시는 중산층이 체제를 지속적으로 수용할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유신헌법은 대통령 선거에 정당과 국민의 직접 참여를 금지하였다. 이에 따라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절차를 거처 선출된 대의원들에 의해 1972년 선거에서 99.9%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일명 체육관 선거로 일컬어지는 대선이 1978년에 다시 실시되고 박정희는 동일한 득표율로 재선된다. 이런 형태의 선거가 두 번째 되풀이되면서 체제 유지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둘째, 장기지속 권위주의체제하에서 국가주도로 추진된 발전은 시간이 흐르며 부패를 확산 시켰고, 특히 유신 후반기에 접어들어 중화학공업의 의욕적 추구가 야기한 고인플레와 세계경제침체에 따른 수출부진이 야기한 심각한 경기후퇴는 발전국가의 신뢰성에 타격을 가하여 민심이반을 촉진한다. 1978년 12월 13일 행해진 총선에서 야당이 집권 공화당을 1.1%앞서 득표하게 된 것은 중산층을 포함한 민심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1979년에 강경파 김영삼이 제도권 야당의 지도자로 선출되고 김대중 중심의 재야세력과 연합하여 체제에 대한 적극적 도전의지를 밝힌다. 주목할 것은 이 무렵 박정희 스스로도 체제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고 실제로 유신헌법 개정과 관련된 연구를 착수시키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판단과는 별도로 실제 박정희의 통치행태에도 일종의 말기적 징후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평소 한 치의 예외도 없이 팽팽하게 유지하던 보안기구 사이의 견제와 균형체제가 허물어지고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권한이 파격적으로 쏠리는 현상을 사실상 조장한다. 심지어 민간인인 경호실장에게 군 일부 병력의 지휘권까지 허용하는 정도였다.
 
박정희의 정무적 판단력도 무뎌져서 강경파의 조언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야당 당수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하는 무리한 조치를 감행한다. 장기집권 권력의 피로가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신 후기 권력의 시대적 비적실성은 경직된 정국운영과 함께 경제운영에도 나타난다. 즉 당시 절박했던 경제적 과제였던 안정화정책에로의 전환을 위한 결정적 계기를 만드는 데도 실패 하고 국민경제는 고물가의 늪에서 표류한다.
 
결국 국면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민주화 대항 세력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즉 야당과 학생은 엄혹한 분위기 아래서도 비판과 저항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이는 강경대응을 불러, 부마사태, 더 나아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암살에까지 이르게 한다.

박정희 통치의 종언은 새 질서 도래에 대한 큰 여망을 낳았다. 그러나 그의 사망은 결과적으로 신군부의 집권으로 이어져서 체제의 민주화 요구는 다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신군부 집권의 배경과 과정은 독립된 연구주제가 될 것이나 본 연구에서는 구조적 요인으로 박정희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여망의 증폭과는 무관하게, 이념과 이익면에서 기존 질서를 선호하는 군부, 관료, 대기업 집단을 주요 구성 부분으로 하는 유신 지배연합체제는 온전한 결속체로 남아있었다는 사실, 따라서 박정희 제거의 직접적 계기가 통치 엘리트 사이의 궁중 음모적 갈등에서 오게 되었다는 사실, 상황적 요인으로서 민주화 세력은 심하게 분열된 반면, 악화되는 경제상황이 중산층을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 세력으로부터 신속하게 거리를 두게 하고 오히려 안정 선호집단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전두환 정부는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체제변화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것에 부응한다는 신호로 신헌법에서는 대통령 연임제, 대통령의 국회의원 지명권 등 유신헌법의 독소조항을 제거한다. 경제적으로는 안정화 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통해 복원된 성장 동력을 기반으로 3저 현상 등에 힘입어 이른바 단군 이래의 호황을 창출해낸다. 그러나 신군부 헌법 역시 체육관 선거체제를 유지하였고 전두환은 1981년 2월, 선거인단 90.2%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는 신군부체제가 유신체제의 아류라는 혐의에서 벋어날 수 없게 하였다.
 
더구나 신군부 정부는 광주에서의 원죄도 등에 지고 있었다. 김영삼․김대중 등 민주화 지도자 들은 직선제 개헌을 민주화를 상징하는 구호로 내세우게 되고 이에 대한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1985년 총선에서 확인하게 된다. 직선제 개헌을 지지하는 민심의 표출에도 불구하고 신군부는 간선제 고수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들 역시 장기집권 권위주의 권력의 경직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국면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대항세력에게서 오게 된다. 즉 시대정신에 순응하는데 실패한 권력을 압박하여 6․29 선언을 받아낸 것은 야당이 주도한 대중 봉기였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당시 사태 전개 과정에서 방향을 결정할 최대의 변수로 등장한 것은 중산층의 향방이었다는 점이다.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속도전식 빠른 성장은 중산층이 사회의 중추부를 장악한 산업사회를 창출해냈고 이들의 지지는 체제유지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경제성장의 수혜자로서 길거리 정치에까지 기꺼이 참여하기는 힘든 집단이다. 이때 민주화운동 집단의 자극과 동원은 중산층을 적극적 행위자로 전환시킨 촉매역할을 하였고, 드디어 중산층 시민까지 거리의 시위에 적극적 참여자가 되며 균형의 추는 민주화 세력 쪽으로 기울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전두환도 중산층의 향배에 축각을 세우고 있었으며, 애초에는 그들은 안정지향적 집단이기 때문에 대정부 봉기로부터 거리를 둘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는 상이하게 소위 넥타이부대마저 직선제 시위에 적극적 가담자가 되자 전두환도 직선제를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뒤를 이은 6․29 선언과 함께 기본권을 회복하고 3권 분리원칙을 관철시킨 신헌법이 채택되고, 직선제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등 장기지속 민주주의 시대가 개막 된다.
 
통합의 역사인식은 민주주의 시대 개막의 직접적 계기로서 민주화 세력의 투쟁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장기지속성을 띨 수 있도록 만든 구조적조건은 군부 권위주의 시대에 달성된 산업혁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강조한다. 산업혁명은 민주화를 불가역적 현실로 만든 중산층 위주의 계층구조를 창출해내는 거의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7. 결론

본 연구는 통합의 역사인식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개괄하였다. 통합의 역사인식은 현대사의 주요 집단들이 한국사회가 건국 이후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산업화를 통해 성숙한 근대 국민국가체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상보적 그리고 상호의존관계에 있었다고 보는 역사인식이다. 본 연구는 주요 행위자로 보수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상정하였다. 보수산업화 세력은 건국 이후 1987년까지 국정을 주도해온 세력이고 민주화 세력은 이들에 대항해왔던 세력이다.

본 연구는 건국 이후 상당기간 보수산업화 세력은 인권과 대항세력을 탄압하는 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보수산업화 세력은 국정주도 세력으로 건국에 성공하였고 대한민국을 정체성 있는 공동체로 가꾸었으며, 안보체제를 유지하며 산업혁명의 성공적 추진을 통해, 대한민국이 성숙한 근대 국민국가로 발전해가는 데 불가결한 기반과 틀을 마련해놓았다는 사실도 강조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에게는 이들의 권위주의적 정치 행태만이 시종일관 관심의 초점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이들이 근본주의적 민주운동 사관으로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민주운동 사관은 민주주의의 실천을 모든 상황 아래서도 최우선하는 과제로 전제하고 민주주의는 운동과 투쟁을 통해 확립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에서는 안보와 경제발전이 민주주의 실천에 못지않은, 또는 그보다 더 절박한 국가적 과제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또 민주주의를 반석위에 놓기 위해 경제발전은 결여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을 소홀히 여기기도 한다.
 
통합의 역사인식은, 보수산업화 세력은 역사에 대한 현실적 감각에 기반하여 안보와 산업화 과제에 매진하여 근본주의적 민주주의관과 민주화 세력의 한계를 극복한 집단임을 지적하였다. 덧붙여 강조한 것은 안보와 산업화를 속도전식으로 달성해가는 과정은 기능적 필요에 의해 어느 정도 정치적 민주주의의 작동을 제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동시에 본 연구는 보수 산업화 세력의 권위주의적 장기집권체제는 예외 없이 집권 후반부에 접어들면 권력정치의 타성에 빠져들어 시대적 적실성을 상실한 권력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민주화 세력은 적실성을 상실한 권력에 충격을 가하여 새로운 국면전환의 계기를 만들냈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구체적으로 보수산업화 세력을 상징하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퇴장 배경과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제시되었다. 민주화 세력은, 특히 6월 항쟁을 주도하여 민주주의로의 전환 과정을 재촉한 공로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또 민주주의의 실천은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민주화세력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의미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는 동시에 6월 항쟁이 장기 지속 민주주의체제의 확립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군부 권위주의하에서 성공적 추진된 산업화라는 현실이 놓여 있음을 강조 하였다. 산업혁명을 매개로 한국사회는 비로소 장기 민주주의체제의 유지에 불가결한 사회․경제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주화 세력의 신장과 성장의 근원적 배경으로 건국과 함께 도입된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본 연구는 이상의 논지에 따라 건국, 이승만 시대, 박정희와 군부 권위주의 시대를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본 연구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상보적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4·19와 5·16의 관계를 홉스 바움의 ‘2중 혁명’의 논리로 인식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한다.

이상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통합의 역사인식은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설명하는데도 적실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타나는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유용한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한다. 오늘날 대립구도 축을 형성하는 여야의 두 세력은 대부분 보수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에 그 원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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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4/16 [09:08]  최종편집: ⓒ 환타임스
 
인간성 회복이 우선이다. 천사자 10/10/13 [22:14] 수정 삭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자찬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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