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민족선도민족역사민족종교민족무교민족역학민족문화 로그인 회원가입 환타임스에 바란다 후원하기
뉴스일반칼럼기획물같이 바람같이민족언론동맹靈性동아리동맹환포터통신 환토방 바로가기
편집: 단기 4353.06.04 03:57 (서기 2020)
기획
`국민통합` 길을 묻다
유엔미래포럼 박영숙의 미래예측보고서
이송의 중국이야기-지략의 귀재
윤영용의 체험소설 `31move.org 봉황각`
고담의 미래소설 `거리검 축제`
세종대왕 통곡하다
쉽고 재미난 점성술 교실
황천우의 삼국비사
황천우의 연재소설 `매화와 달`
현정수의 수행소설 파라가테
환타임스 끝장기획
회원가입
환타임스에
바란다
후원해주세요
기사제보
HOME > 기획 > `국민통합` 길을 묻다
4.19와 5.16
<환타임스 창간기획>'국민통합'길을 묻다<10>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민주화의 갈등과 의존구조'(중)
 
김세중
4. 이중혁명으로서의 4·19와 5·16

1960년 4·19 민주혁명은 시효가 지난 통치권력을 퇴장시키고 새 시대로 국면전환의 가능성을 연 역사적 사건이다. 4·19는 급진적 해석 등 여러 가지 시각에서 이해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실천을 목적으로 한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는 일단 그것이 3·15 부정선거라는 민주주의 원칙의 파괴가 직접적 계기가 되어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 또 4·19 당일 발표된 대학생들의 선언문들은 예외 없이 민주주의의 훼손에 대한 분노와 그 회복에 관한 것이라는 점 등에 근거해서이다. 그리고 정치현실에서도 4·19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고귀한 투쟁과 희생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되어 (자유)민주주의 운동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해왔다.
 
또 그것은 자유주의적 민주당 정부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4·19 민주혁명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민주당 정부는 짧은 시간 내에 박정희가 이끄는 군부혁명으로 붕괴되고 만다. 그리고 5·16 혁명은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되는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막을 여는 계기가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4·19와 5·16을 민주와 반민주를 상징하는 대척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인식을 낳았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현실에서는 소위 4·19 세대와 5·16 주체 사이에, 더 나아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화해와 협력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주목하여 본 연구는 통합의 역사인식에서는 4·19와 5·16은 상호배제적 대척적 사건이 아니라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달성을 통해 성숙된 근대 국민국가체제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상보적 관계에 있던 사건들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먼저 전제적으로 지적할 것은 4·19를 주도 했던 학생과 5·16의 주역 이였던 군부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근대성을 흡수한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 이들이 열망했던 근대성은 민주주의, 산업화, 그 외 자주적·자립적 주권국가체제의 확립 등으로 압축될 것이다.
 
이때 학생은 특유의 이상주의적 경향 때문에 근대국가의 이념적 정치적 측면인 민주주의의 즉각적 실천에 큰 강조점을 둔다. 이때 그들은 운동과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는 확립될 수 있고 저발전의 문제도 민주주의의 실천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는 면에서 근본주의적 민주운동 사관을 지닌 집단이었다.

4·19 주체들의 기대와는 달리 4·19의 후광에 힘입어 성립한 민주당 치하에서 민주주의는 건전한 제도화보다 무절제한 원심력을 자극하여 정치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제도로 변질된다. 1961년 초에는 또 다른 4·19 발발 가능성을 전제하는 소위 ‘4월 위기설’이 전사회적으로 회자될 정도였다. 빈곤과 무질서, 그리고 절망감이 팽배하는 상황에서 사회 일각에는 독제체제의 등장에 대한 기대까지 나타난다.
 
이를 배경으로 일부 급진학생들은 한국의 실정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직접 북한과 소통하는 민중주의적 통일운동을 추진하였고 이에 대한 정부 대응은 지극히 무기력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군 내부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정부 전복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민주주의가 정통성 위기에 봉착하고 비효율적 체제로 전락한 것이다. 5·16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발생한다.

이는 5·16이 주도자의 권력의지만이 아니라 높은 역사적 개연성을 지닌 사건임을 말한다. 동시에 이러한 실상은 5·16을 학생민주혁명을 부정한 사건이 아니라 이상주의적 근대화 세력의 실패한 혁명에 대해 실용주의적 근대화 집단이 대안으로 부상하는 계기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즉 근대집단으로서의 군부는 현실적 실용적 특징에 따라 권력 장악과 함께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이 여타 근대성 예를 들어 자주와 자립을 달성하는 전제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산업사회 건설을 민주주의 확립의 전제조건으로도 인식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음 장의 논의가 보여 주듯이 5·16은 일종의 산업혁명 더 나아가 한국사회 근대화 혁명의 본격적 출발점이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5·16이 4·19의 이상이었던 민주혁명을 성공시키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 이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4·19 결과 탄생한 정부가 5·16 군사정부에 의해 대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4·19의 이상인 민주주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 사회경제적 기반이 결과적으로 5·16 세력에 의해 창출된다는 사실이 4·19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4·19는 학생을 강력한 행동적 민주화운동 집단으로 정초시키고 또 민주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작용하여 어려운 상황 아래서도 민주화운동을 견인하고 추동하는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이결과 4·19는 구체적으로 군부 권위주의 권력이 시대적 적실성을 상실할 때마다 국면전환을 야기하여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힘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이상의 관찰을 배경으로 본 연구는 통합의 역사인식에서는 4·19와 5·16의 관계를 홉스 바움의 ‘2중혁명론’에 따라 인식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즉 홉스 바움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자유주의 혁명은 서양문명이 성숙한 자유주의적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2중 혁명으로 불리는 역할을 각기 담당했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4·19와 5·16이 한국사회가 자유주의적 산업사회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서양의 2중 혁명과 유사한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5. 압축 산업화와 근대국가의 사회경제적 토대 건설의 계기로서의 군부 권위주의 시기

5·16 혁명은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된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막을 연다. 박정희, 그리고 후에 전두환 시대까지 이어지는 군부 권위주의체제는 이승만 시대 권위주의보다 장기간 지속되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더 가혹한 형태를 띠게 된다. 따라서 이 시대는 특히 민주운동 사관에서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가 가장 치열하게 부각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민주운동 사관은 이 시대의 의미를 주로 형극의 상황하에서도 지속되었고 끝내 6월 항쟁을 주도하여 6·29 선언을 도출해낸 민주화 운동의 천작에서 도출한다.

실제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 시기에 지속적인 시련과 위기를 경험한다. 1961년 5월 군부의 권력 장악부터 1963년 12월 민정이양까지는 일종의 군령에 의한 통치기간이었다. 민정이양과 함께 헌정질서가 회복되고 정당, 선거, 국회 등의 활동이 재개된다.
 
그러나 민정이양 후에도 중앙정보부, 국군보안사령부, 청와대 경호실 등 국가 보위기관들이 정치 과정에 깊게 개입하여 헌법 개정, 권력구조개편, 권력승계 같은 핵심적 정치쟁점을 사실상 주도하고 이 과정에서 3권 분리 등 민주주의 원칙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들 예를 들어 보위기구에 의한 국회의원의 자의적 연행 같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특히 유신체제는 제도 수준에서도 3권 분리 원리와 정당의 정권창출 기능이 부인되었고 긴급조치가 주요 통치도구로 활용되어 많은 정치범이 양산된다. 1979년 10월 박정희의 사망은 또다시 신군부 집권으로 이어졌고 이들의 집권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과 대규모 숙청작업의 예에서 나타나듯 난폭한 국가폭력이 행사된다. 뒤이어 신군부 지배에 대한 저항이 투신자살, 분신 등 극한적 형태로 연이어 나타나는데 이 역시 상당부분 체제의 폭력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상의 소모적 제시는 군부 권위주의시대 정치의 억압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통치구도 아래서 산업혁명이 달성되고 성숙된 근대국가의 불가결한 조건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통합의 역사인식은 지적한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정 우선순위의 대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근본주의적 민주주의관을 국정운영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던 민주당정부와는 달리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국정 최우선과제로 설정한다. 박정희는 명시적으로 민주주의 실천에는 경제적 토대가 필요함을 역설하였고 경제발전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타협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언급하였다. 이후 군부 권위주의가 전두환 시기를 마지막으로 퇴조하기까지 이는 국정운영의 기조였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는 집권과 함께 경제기획원과 총무처 신설 등을 통한 관료제의 대대적 개혁, 일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채택, 금융과 노동통제 조치의 도입, 수출지향 발전 전략에로의 전환, 한일회담 타결 등과 같은 수많은 제도적·정책적 개혁을 통해 일종의 산업화체제를 구축한다. 특히 유신시기에 추진된 중화학 공업화정책에 힘입어 결과적으로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한국사회는 정태적 농업사회에서 동태적 근대 산업사회로의 대전환을 달성한다.

1979년 박정희가 암살된 후 과도기적 혼란 후에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집권한 후에도 고도성장은 지속된다. 그러나 이는 신군부가 70년대 후반 한국경제의 심각한 애로요인으로 등장한 고물가를, 군부까지 포함한 모든 이해당사자의 요구를 단호하게 억제하고 안정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기반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 결과 박정희 암살이라는 돌발사태까지 겹쳐서 80년에는 -4%라는 충격적 후퇴를 경험했던 경제가 동력을 되찾고 마침 발생한 3저 현상에도 힘입어 1985년에는 건국 이후 최초로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는 5·16 혁명 이후 자립경제체제 확립을 목표로 본격화된 산업화를 향한 대질주의 일단락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경제발전은 다음의 몇까지 함의와 특징을 동반한다. 첫째, 장기지속 민주주의를 위한 구조적 조건을 창출하였다. 이는 국가와 시민사회 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국가 관료제의 성숙으로 국가는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법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되었다. 시민사회 수준에서는 중산층 중심의 계층구조가 형성되어 권위주의체제를 견제하고 급진이념과 급진운동을 주변화할 수 있는 세력관계와 문화가 형성된다.

둘째, 성숙된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재정 자립을 통해 근대적 관료제와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국가로 재탄생한 것이다. 나아가 인류사의 새로운 추세가 된 세계화 시대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토대도 갖추게 된다.

셋째,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일정부분 국가주도적 압축발전의 효율적 추진과 일정부분 기능적으로 연관되어있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 연관성은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 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책의 일관성과 장기지속성 담보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질서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 권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2공 당시 민주주의 질서 아래서 경험했던 혼란과 무질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넷째,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발전은 특히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동반한다. 압축발전은 산업사회 고유한 갈등마저 압축적으로 야기하였고 여기에 국가주도 발전이 동반한 정경유착의 폐해가 중첩되어 갈등이 첨예한 형태를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될 사항은 이 시대 민주화 대항 세력의 화두는 거의 전적으로 민주주의 실천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성숙된 근대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산업혁명이 지니는 엄청난 의미에 대한 안목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하>로 계속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04/09 [10:07]  최종편집: ⓒ 환타임스
 
물같이 바람같이
강현무의 우리문화 X파일
권영준의 인체삼육도 원리
권영준의 하늘말·하늘글·하늘법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김용성의 태극한글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김주호의 얼 말 글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박민찬의 도선 풍수
박상근의 웰빙 풍수
박용규의 주역원리 탐구
반재원의 우리 희망 토종약초
서상욱의 주역 산책
성미경의 하늘그림궁
소윤하의 穴針뽑기 대장정
이공훈의 道敎탐색
이용범의 한국陶瓷 탐험
이훈섭의 단군제영한시 되보기
정진중의 씨알 교육
조성제의 무교 生生之生
조옥구의 한민족과 漢字 비밀
조옥구의 한자 실전인문학
최근 기사 클릭 베스트5
  환타임스 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제휴문의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오시는 길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93 대은B/D 5층 ㅣ 대표전화 : 02-733-8024 ㅣ 팩스 : 02-733-8025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0922 ㅣ 등록일자 : 2009년 7월30일ㅣ 발행인 : 김인배 ㅣ 편집인 : 김영인 ㅣ 청소년보호책임자 : 호승택
Copyright ⓒ 2009 환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whantimes.com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