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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새로운 민주주의를 고민할 단계
<환타임스 창간기획>'국민통합'길을 묻다<8>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 교수 '보수와 진보의 공생'(하)
 
조홍식
4. 복지국가와 사회적 파트너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극을 주기도 하고, 일정 기간 동안은 합치되는 경향을 보여다가도 어느 순간이나 시기에는 다시 상반된 경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영국의 경우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과 자유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연결되는 정치 발전이 상당히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면서 일관성 있는 상호작용을 지속해 온 경우이다. 하지만 대륙 대부분의 국가의 경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항상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발전과는 다른 정치적 경로를 겪어 온 국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지만 독일은 19세기와 20세기 전반 대단한 자본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제국 체제 아래의 권위주의적 보수 독재와 전체주의적 나치 경험을 겪어야 했다. 프랑스의 제2제정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등은 모두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복합적인 상호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상당한 보완적 체제를 형성하여 균형 있게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정치체제의 혼란스런 관계가 적어도 일시적으로 타협점을 찾았다고 할 수도 있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여와 야, 좌와 우가 서로를 인정하고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규칙을 형성하면서 헌정질서를 구축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인 영역에서 자본과 노동, 기업과 노조가 서로를 인정하고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경제의 틀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유럽에서는 특히 이 같은 민주적 혹은 사회 민주적 자본주의가 전후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민간의 자본이 경제 체제를 지배하고 국가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었던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전통적 자본주의 국가에서조차 사회민주적 자본주의는 광범위하게 전파되었고 어떤 의미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였다. 이 새로운 체제는 경제의 발전 정도나 국가의 전통에 따라 커다란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사회복지체제가 크게 강화되면서 일명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과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일반화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복지국가를 영국과 미국형의 자유주의 모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모델,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대륙 국가의 조합주의-국가주의 모델로 나누어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유형이나 모델에 속하는가와 상관없이 유럽의 국가들은 국민총생산 대비 20~40% 정도를 복지국가의 지출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지출에 할당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했을 때 무척 높은 지출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매우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파트너십이라고 불리는 국가와 자본, 그리고 노동의 다양한 협력관계가 제도화되어 있다. 사회적 파트너십이 가장 발달한 경우는 오스트리아인데 이 국가에서는 기업인이나 노동자 모두 해당 전국 조직에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과 자본의 조직률이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대표들이 합의한 사항을 중심으로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조합주의의 양상을 나타낸다.
 
독일의 경우에도 정부의 역할을 제한적이지만 '사회적 시장 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라는 기본 개념이 잘 드러내고 있듯이 자본과 노동의 협력적 관계가 제도화되어 있다. 산업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협상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기업에는 노조의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즉 경영권에 대한 참여를 보장 받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유럽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프랑스는 역설적으로 사회적 파트너십의 미비한 수준 때문에 빈번한 파업과 시위를 통한 폭발적이고 우발적인 움직임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파업이나 거리에서의 동원율이 높으면 일시적인 노·사·정 연석회의가 열려 거시적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셋째, 정부가 국가 경제를 거시적으로 계획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에서 논의한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등은 가장 대표적으로 광범위한 부문을 국영화하여 국가가 산업에 직접 간여하는 모델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정부가 노동과 자본의 대표들을 동원하여 거시경제적으로 국가운영을 주도하는 체제를 형성하였다.
 
프랑스는 소련의 중앙집중적이고 강제적인 계획경제가 아닌 합의적이면서 유인적인 계획경제 모델을 시행하였고 상당 기간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도 케인즈(Keynes) 식의 거시경제적 조정을 시행하였고 네덜란드도 나름의 경제계획 모델을 실현하였다.
 
물론 나치즘의 치욕적 과거를 안고 있는 독일은 국가의 직접적인 경제 개입은 피하였으며, 특히 연방주의 체제가 이런 개입에 한계를 규정하였다. 독일은 위에서 보았듯이 국가의 직접 개입보다는 노동과 자본의 상호관계를 선진적으로 규정함으로서 경제의 평화를 추진하였다.

선진국에서 하나의 공통적·장기적 모델이었던 민주적 자본주의 혹은 포디즘(Fordism)은 1970년대에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통해 많은 부분 붕괴되거나 수정되었다. 유럽에서도 영국은 1979년 집권한 보수당의 대처 총리가 대표적으로 변화를 주도하였으며, 이는 점차 유럽 이웃 국가로 전파되었다.
 
영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노조의 역할을 강력하게 제한하였고, 국영 부문을 과감하게 민영화하였으며 복지 국가의 운영에 새로운 제약과 축소의 원칙들을 도입하였다.
 
영국의 신자유주의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로 전파되었고 1980년대에는 대륙 국가들도 민영화와 탈규제의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또한 1986년에 유럽에 하나의 시장을 만들겠다는 단일유럽의정서(Single European Act)의 체결은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형성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일부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추진되었다고 해서 위에서 우리가 주목한 민주적 자본주의 모델이 완전히 붕괴되거나 변화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거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완전히 복지국가와 사회적 파트너십을 없애버렸다고 한다면 커다란 오류이다.
 
유럽의 복지 국가는 다양한 정책적 변화의 대상이었지만 여전히 그 근본은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다. 달리 말해서 여전히 국민총생산의 사회지출 규모를 유지하고 있으며, 영국과 같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첨단에 서 있는 국가에서도 국립의료체제(NHS, National Health System)는 기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두 번째 축을 형성했던 사회적 파트너십은 과거에 성장의 결과를 분배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체제에서 이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는 제도로 탈바꿈하였다. 영국은 극단적으로 노조를 붕괴시키는 정책이었지만 대륙의 많은 국가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의 재분배나 실업을 줄이기 위한 노동과 자본의 협력과 합의가 이뤄졌다. 고속성장 시기에 구축된 사회적 파트너십은 경제위기 시에도 제도적 관성을 발휘하여 하나의 협력 체제로 작동하였던 것이다.

국가의 거시경제적 개입과 주도라는 축은 대규모의 민영화를 통해 가장 변화된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자본의 일방적 강화나 국가의 후퇴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 민영화를 추진하면서도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정부가 간접적으로 대규모 주주단을 구성하여 주요 대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보호하는 전략을 적용하였다. 결국 형식적으로 기업의 지위는 국영에서 민영으로 변화하였지만 여전히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노동의 정치적 세력화는 물론 노동의 조직화 자체가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던 한국의 상황에서는 복지국가나 사회적 파트너십과 보수·진보 공생의 관계를 언급하는 것이 생소할 수 있다. 유럽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노동의 조직화를 금지하였고 그 정치적 세력화를 막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 민주적이지 못한 정권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에서는 19세기 후반기에 강력한 사회민주당이 많은 의원을 선거에서 당선시켰지만 통일독일 제국은 1870년부터 1890년까지 비스마르크가 집권한 권위주의 체제였다.

하지만 일단 민주주의의 정통성이 최고에 달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는 복지국가와 사회적 파트너십, 그리고 적극적인 개입 국가체제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민주적 자본주의야말로 진보와 보수의 공생을 가능하게 하는 보완적 양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은 이 체제 아래서 역사상 가장 장기간의 번영을 누린 것은 물론 가장 공평하고 인간적인 발전 양식을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일정한 수정을 동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민주적 자본주의는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경제 모델과 비교하였을 때 특정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신자유주의 유럽의 상징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유럽연합조차 전문가의 연구를 통해 살펴보면 복지국가나 사회적 파트너십의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 차원의 노조연합은 자본가 대표들과의 협의를 통해 새로운 진보적 규제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남녀평등의 분야나 노동자 복지 문제에서도 유럽 차원의 사회적 파트너십은 상당한 진전을 도출해 냈다. 1989년의 사회헌장은 또한 2009년 발효된 리스본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 시민의 기본권에 포함됨으로써 최고의 법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

5. 공생과 공멸

수레가 두 바퀴로 구르고 새가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진부하지만 심오한 진리를 여기서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는 이미지로, 그리고 메타포는 메타포로 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와 그 사회를 반영하고 대변하는 정치가 반드시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축으로 양분될 이유도 필요도 정당성도 없기 때문이다.
 
또 양쪽 날개의 극단 세력이 활개를 치게 되면 새는 바위에 머리를 처박아 죽을 수도 있다.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은 기본적 정치제도에 대한 주요 정치세력의 합의가 안정과 발전에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점이다. 한국도 민주화의 역사가 20년을 넘어서면서 적어도 공식적으로 표명되는 정치세력의 입장에서 헌정질서를 부정하거나 위협하는 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국회의 운영에서 여야 간의 극한적인 대립의 양상을 보여주고 국정운영을 위한 협의보다는 명분 축적을 고려하면서 쉽게 거리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눈에 이러한 정치권의 추태가 만성적으로 보이면서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혐오는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을 가할 수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극단적 정치 세력을 키우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극단 세력의 부상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자제(自制)가 필요한 부분이고 다수결주의에 대한 이해 및 사회화가 필요한 부분이기도하다.

유럽의 경우 대륙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 주요 4개국은 헌법재판 기관을 통해서 극단적인 대립을 완화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사회를 양분하는 주요 사안에 대해 정치세력의 대립은 극단화되기 일쑤고 따라서 헌법재판 기관이 기본권이라는 국가의 근원에서 판단하여 입법의 극단적 부분을 조정하고 대립세력의 합의점 혹은 수용 가능 지점을 찾는 데 기여하였다.
 
물론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헌법재판 기관이 스스로 최대한의 공정성과 중립성, 권위와 적극성을 모두 가져야 하며, 정치세력도 이를 위한 적절한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이로울 때 옹호하고 불리할 때 비판하다가는 기관 자체의 권위를 추락시켜 결국 대립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기제를 모두 잃게 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한국과 유럽의 사정이 가장 다른 부분, 그래서 한국사회의 미래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비교 부분은 복지국가와 사회 파트너십의 문제이다. 유럽의 역사적 경로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르면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 복지와 사회 파트너십이라는 형식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한국은 거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 하나의 모델을 형성하거나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통제 및 개입의 역사가 무척 짧기 때문이다. 선진국 중에서도 유럽의 적극 개입 모델은 미국이나 일본의 친자본적 모델과는 다른 양식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 모델을 두고 여러 사회세력과 정치세력이 논의를 벌이면서 경쟁하고 있다. 보수세력이 미국과 일본의 정치경제 모델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면 진보세력은 유럽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서로 다른 이익과 사상이 대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이 대립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갈등과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정치이고 이를 가장 공평하게 하는 방법이 민주주의 정치라고 하겠다.
 
민주주의란 결국 대립이기에 앞서 대립하기 위한 규칙에 대한 합의라고 보아야 한다. 이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헌정질서에 대한 참여이며 순응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고 출발점이다. 헌법재판 기관을 통한 헌정주의는 법치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조정 기제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형식상으로는 사법적 판단이지만 문제 제기나 판결이 모두 큰 의미의 정치적 판단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정질서의 참여와 순응에 대한 최종적 결정권을 제3자에게 맞기는 형식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가장 높은 이상과 기준을 적용할 경우 정치적 자유는 물론 경제사회적 자유까지 가능하게 하는 사회 민주주의의 실현을 말할 수 있다. 유럽의 정치경제체제는 누구도 감히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비인간적 결과들을 사회적 기제를 통해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가장 우수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첫 단계를 딛고 올라 두 번째 헌정주의의 산고를 겪으면서 세 번째 사회민주주의를 향한 길에 발걸음을 놓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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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3/26 [08:30]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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