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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유사 사학'?
'매국·식민 사학'의 거품 문 카르텔!
<특별기고>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지요"
노론·친일파의 '흑역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에 맞서는 촛불이 움직인다
 
이덕일
문재인 정권 출범과 함께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민족사학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인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발탁된 것을 둘러싸고 친일파 세상이 계속되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새삼 드러나고 있다.
매국·식민사학에 의해 오랜 세월 뒤틀리고 가려진 한민족의 정통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민족사학에 대해 '사이비·유사 사학'으로 매도하는 이 사회의 '흑역사 카르텔'이 준동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사학의 최일선에서 매국·식민사학에 맞서 오고 있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눈부시게 빛나는 환인·환웅·단군의 민족혼을 품은 통찰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강고하게 버티는 대한민국 기득제도권세력의 '허구성'을 짚은 글을 <환타임스>에 보내 왔다.
'단군의 후예들'의 폭 넓은 이해를 돕기 위해 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한겨레 21」, 나쁜 보도 릴레이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환타임스
'드디어 나왔군요, 역시… ' 「한겨레 21」에서 특집 형태로 보도한 "권력과 사이비 역사가 쓴 '고대사 침탈사'"라는 보도를 보고 한 지인이 한 말이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그간 식민사학을 비판해왔던 사람들의 예상대로 카르텔 언론이 움직였다. 6월 1일 「조선일보」, 6월 5일 「한국일보」, 6월 6일 「경향신문」……. 그 다음은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에는 이들 3개 신문에 뒤질 수 없다는 보도 태도를 견지했던 「한겨레」가 나올 차례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6월 7일 도종환 후보자 인터뷰를 보도했다. 도종환 의원과 이른바 강단사학계를 싸움 붙이는 인터뷰였는데, 나중 알고 보니 한참 전에 인터뷰한 것을 이때 보도한 것이란다. 그래도 이 보도는 그간 했던 것과는 조금 달리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식민사관 청부보도는 아니었기에 「한겨레」가 조선총독부 역사관 옹호에서 한 발 뺐나 했더니 역시……라는 이야기였다.

그중 한 제목이 재미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역사는 역사학자에게' 「한겨레」 폐간 선언문인 줄 알았다. 이런 논리면 '진료는 의사에게 국회는 국회의원에게', '……행정은 공무원에게', '…원전은 원전전문가에게' '건설은 건설회사에게', '군대 일은 군인에게', '수사·기소는 검찰에게' '……' 수천 개의 이런 구호가 가능할 것이다. '신문은 필요 없다' 전문가들이 다 하면 된다. 더구나 한겨레가 말하는 '역사학자'는 누구인가?

길윤형 편집장은 '국뽕 3각연대'라는 제목으로 '만리재에서'라는 권두언 비슷한 것을 썼는데, 그 만리재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혁명가들이 수감되어 고통받던 곳인지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 이것이 '일군의 학자'들 눈에는 견디기 힘든 '식민사학'의 잔재로 비친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낙랑=하북성설'을 말하는 '옛 사서의 기록'은 많아도 '낙랑=지금의 평양'을 말하는 '옛 사서'는 전무하다. 게다가 마치 북한에서 2600여기의 '낙랑군 고분'을 발굴해서 북한도 '평양=낙랑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썼는데 완전한 조작기사다. 북한의 주장은 2600여기의 고분을 조사했지만 그 중에 낙랑군 고분은 한 기도 없었다는 것인데, 마치 북한에서 2600여기의 '낙랑고분'을 발굴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뒤집어씌운 것이다. 식민사학에 빠지면 학자고 언론인이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북한에서 말하는 것은 한사군 낙랑'군(郡)' 무덤이 아니라 최리가 국왕으로 있던 낙랑'국(國)'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그 낙랑국인데, 독립왕국의 국(國)자를 낙랑 군(郡)이란 식민지로 둔갑시켜놓고 독자들을 속이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조에 따르면 최씨 낙랑국은 서기 32년에 망했는데, 국내 식민사학계는 서기 313년까지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완전히 다른 내용을 같은 것처럼 덮어씌워 독자들에게 사기 친 것이다.

북한의 역사학자 안병찬은 「평양일대 락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조선고고연구』 1995년 제4호〔루계 97호〕)에서 이렇게 썼다.

"이 기간에 평양시 락랑구역 안에서만 하여도 2,600여기에 달하는 무덤과 수백 평방 미터의 건축지가 발굴되었으며 15,000여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찾아냈다. 이것은 일제가 ‘'랑군 재평양설'을 조작하는데 자료적 기초로 이용하기 위해서 조선 강점 전 기간에 도굴한 무덤 수에 비하면 무려 26배에 달한다."

북한의 안병찬은 일제보다 26배나 많은 2,600여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일제가 조작한 '락랑군 재평양설'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는 것인데, 「한겨레 21」의 길윤형은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라고 180도 거꾸로 보도했다. 유신, 5공 때 용공조작 수법의 완벽한 부활이다.

게다가 이들 카르텔 언론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정치권력에 의해서 중단되었다고만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 이 지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역시 여러 번 말한 내용이지만 동북아역사지도는 북한 강역을 모두 중국에 넘겼고,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 백제, 가야는 삭제했다. 반면 이보다 이른 3세기에 일본 열도에는 열도의 반 가까이를 통일한 야마토정권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 놨다. 그래야 임나일본부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를 일관되게 삭제했다. 특히 독도는 5개월간의 수정기한을 주면서 다시 그려오라고 했는데도 그려오지 않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최고위층은 나에게 그 5개월간의 수정 기한 동안 지도 책임자들을 불러서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만드는 지도니 독도는 꼭 그려 와라. 점이라도 찍어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는 그려오지 않았다. 독도는 일본 강역이라는 것이다. 「한겨레 21」도 독도는 일본 강역이라는 것인가?

길윤형은 "정치인과 유사역사학의 결합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탠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면서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종교 같은 항일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매도했던 것이나 독립운동가 후손을 매도하는 것이나 어쩜 그렇게 조선총독부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빼다 닮았는지. 그러면 이회영 선생의 손자가 이회영 선생의 역사관을 계승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한겨레 21」처럼 '조선총독부 역사관 만세!'를 외쳐야 하나. 길윤형은 그러면서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신성불가침의 '국뽕 3각연대'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부터 진행되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기했습니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라고 끝을 맺었다. 내가 묻고 싶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노론·친일파 세상과 박노자, 한겨레

조선총독부 사관이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는 「한겨레 21(2017. 6. 26)」에서 단군을 사이비 역사학으로 매도하고 조선총독부 사관을 비판하는 역사학자를 유사사학자로 모는 특집을 기획했는데 역시 박노자가 등장했다.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박노자 얘기를 좀 하려 한다. 한겨레가 박노자를 칭송한 횟수는 따지기도 힘들지만 나는 박노자가 한국고대사에 대한 1차사료 해득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1차 사료 해득능력이 있다면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잘못된 관점을 둘째치더라도 역사학적 방법론에 저토록 무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겨레 21」과 인터뷰에서 "파쇼적 판타지에 기반한 유사사학의 인기 상승은 우려할 만한 징후"라며 "유사사학에 대중이 전염된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까지 영향 받은 상황이 우려스러웠는데 공론 대상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야 말로 도종환 의원이 장관에 지명되자 그간 음지에서 음습하게 결탁한 채 유신·5공시대보다 심한 용공조작식 프레임으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수호하던 매국사학과 언론카르텔의 결탁사실이 공론화된 것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파쇼적 판타지에 기반한 유사사학'이라는 말은 박노자를 비롯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매국사학자들에게 돌려주면 명실이 상부하는 말이다.

지금 논란이 된 역사사실 중 '낙랑=평양설'만 검토해보자. 늘 이병도를 칭송하고, 늘 신채호를 비난하는 박노자 류의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추종론자들은 '낙랑=평양설'을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고 우긴다. 지지난 정권에서 한국학 중앙사업단장으로 연간 300억 정도의 예산을 집행했던 극우파 역사학자가 공개 학술대회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 이 극우파와 박노자 류의 역사관은 신채호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에서 서로 일치하고 동지가 된다.

'낙랑=지금의 평양'이라는 사료 구경 좀 하자

'낙랑=평양설'이 '조선의 수도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라는 말이라면 정설, 통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2100년 전에 설치된 낙랑군의 위치 문제는 다르다. 이 문제를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해결하려면 조선총독부에서 무엇이라고 주장했는지, 또는 이를 비판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무엇이라고 주장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낙랑군이 존재하고 있을 때 편찬된 중국의 고대 역사서들은 무엇이라고 쓰고 있는지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 중국은 자고로 자국에 불리한 것을 쓰지 않는 춘추필법 정신이 확고하기 때문에 중국 사서로 낙랑군의 위치를 찾는 것은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남긴 사료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중국 사서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페북을 통해 '중국 1차 사료로 보는 고조선과 낙랑군의 위치'에서 '낙랑군=고대 요동=하북성'을 말하는 중국 고대 사료를 여럿 제시했다. 더 많은 사료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중 하나만 다시 제시하면 낙랑군 산하 25개 속현 중에 열구(列口)현이 있는데, 열수(列水)라는 강의 하구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그 열수의 위치에 대해 『후한서』 「군국지」는 “열수는 강이름이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 水名, 列水在遼東)”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요동에 있는 열수 하구에 있는 열구현도 요동에 있고, 낙랑군도 당연히 요동에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는 열수를 느닷없이 대동강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가 그대로 따랐고, 국내 매국사학이 이를 그대로 따라서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고 우기고 있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박노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후한서』 「군국지」에서 "요동에 있다"고 말한 열수를 대동강으로 둔갑시키려면 '열수는 요동이 아니라 한반도 서북부에 있다'고 말하는 다른 사료를 제시해서 교차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학적 방법론이다. 그러나 그런 사료가 있을 턱이 없다. '낙랑=평양'은 조선총독부의 정치선전에 불과했고, 이마니시 류는 나치 괴벨스의 하수인과 같은 정치선전원이었을 뿐이다. 박노자는 「한겨레 21」에 연재한 내용을 묶은 『거꾸로 보는 고대사』에서,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대해 "1929년에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을 발표한 경성제국대학 겸임교수 이마니시 류와 같은 '과학적 근대 사학자’(한겨레출판, 2010)"라고 극찬했다. 이마니시 류의 「단군고」는 단군이 12세기부터 13세기에 창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조선총독부의 눈으로 본 고대사』라고 하면 역시 명실이 상부한다. 박노자 역시 조선총독부의 정치선전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나 박노자를 인터뷰한 오승훈은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유사사학자'로 몰려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사료를 제시해야 한다. 그대들이 몰랐다면 빨리 박노자 또는 그대들이 음습하게 거래하고 있는 매국사학자들에게 빨리 자료를 달라고 해라. 그래서 우리들과 공개토론에 붙여라. 지상논쟁도 좋고, 대면논쟁도 좋다.

토론을 거부하는 사이비 학자, 토론장을 만들지 않는 사이비 언론들

그러나 이들은 절대 토론에 나오지 않는다. 자신들이 사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르텔 언론을 통해 '파쇼적 판타지에 기반한 유사사학' 운운하는 조선총독부 정치선전만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파쇼적 판타지에 기반한 유사사학' 운운하는 낙인은 박노자 류에게 돌려주고, 사이비·유사언론이라는 낙인 또한 길윤형·오승훈 류의 카르텔 언론인들에게 돌려주어야겠다. 언론의 기본인 팩트 확인 생략은 말할 것도 없고, '사이비·유사'라는 엄청난 낙인을 찍으면서 대상자에게는 반론을 듣는 시늉조차 않는 것은 언론이 아니라 사론(私論)이자 사론(邪論)이기 때문이다. 사실 논(論)자도 아깝다. 박노자야 말로 ‘파쇼(조선총독부)적 판타지(아무런 사료 없는 공상)에 기반한 유사사학자’이고 길윤형·오승훈이야말로 그를 추종하는 '사이비·유사기자'이다.

박노자는 나를 '배타적 국수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중국의 여러 사료에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다고 나온다"고 말하고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 것이다"라고 사료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배타적 국수주의가 되는지 설명하기 바란다. 박노자가 설명을 거부하면 길윤형이나 오승훈이 대신해도 좋다.

박노자는 브레즈네프 시절에 소련에서 배운 좌파 전체주의에 일본의 극우파 전체주의를 접맥시킨 희한한 의식구조를 갖고 한국 사회를 비난해왔다. 소련에서 배운 대로 노동자(민중)을 끌어들여 좌파인 척하는 것으로 자신의 파시스트적 사고를 위장할 줄 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음은 어느 임금이 한국 백성들에게 내린 조서인데 누구인지 맞춰보자.

"(조선)민중은 직접 짐의 위무 아래에서 그 강복(康福)이 증진될 것이며, 산업 및 무역은 평안한 다스림 아래에서 현저한 발달을 보게 될 것이니 동양평화가 이에 의해 더욱 그 기초를 공고하게 될 것을 짐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 임금의 말일까? 일왕 메이지가 대한제국을 빼앗은 당일(1910년 8월 29일) 자신의 노예로 전락한 한국 백성들에게 한 말이다. 강도가 남의 집을 강탈하고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고 잘 살게 해 주기 위해서 두 집을 합쳤다고 말하는 것인데, 박노자 류의 말과 일치한다. 머릿속 실제 생각과 말이 따로 놀다보니 팩트는 없는 대신 인터뷰에서도 '세계 보편적인 시각' '균형 잡힌 역사 서술' 따위의 내용 없는 큰 담론으로 자신을 위장한다.

늘 가해자의 편을 드는 박노자

더 큰 문제는 이런 큰 담론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위장한 채 늘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시하는 것으로 가해자, 즉 일본 제국주의의 편을 든다는 점이다. 박노자가 인터뷰에서 훌륭한 학자로 칭송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피해자와 그 자손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길 꺼려하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중앙일보』 2017.5.24.)"이라고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가족도 동시에 비난했다. 길윤형이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지 않는다고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원장을 비난한 것과 마찬가지 논법이다. 오늘 세상을 떠날지, 내일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도덕적·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박노자 류의 진단은 늘 이런 식이다.

박노자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환인·환웅·단군을 일본 제국주의의 천조대어신(天照大御神·아마테라스 오미카미)과 그 손자 니니기노 미코토, 진무(神武) 천황 등과 "대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런 식의 물타기는 박노자의 특기다. 아마테라스나 니니기노는 물론 초대 일왕이라는 진무는 모두 허구의 인물인데다가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진무는 니니기노의 증손자로서 환인·환웅·단군과는 비교대상이 아니다. 단군을 부인하기 위해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을 끌어들인 것뿐이다. 이런 동일시 논법으로 단군을 국조로 인식했던 한국독립운동가들은 일제 파시스트들과 같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노론, 친일파 세상이 계속되는 이유

박노자는 인터뷰에서 "중국·일본 등 이웃 나라의 과학적이며 양심적인 학자들과 손잡고 정복과 지배의 역사가 아닌 민중/피지배층의 역사를 함께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헛웃음이 절로 난다. 박노자는 자신의 머릿속 생각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 180도 다르다. 나야말로 일본제국주의가 만든 '정복과 지배의 역사'가 아니라 그에 맞섰던 '피압박 민중/피지배층의 역사를 함께 쓰자'고 주장하다가 박노자 류와 그 카르텔 언론에 의해 '사이비·유사역사학자'로 매도된 것 아닌가? 박노자가 이런 정신분열적이고 자기모순적인 말로 한국사회를 극도로 비난하면 사대주의에 찌든 한겨레·경향은 매조키스트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얼른 종아리를 걷는다. 그런 자학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나 가뭄에 속 타는 농민들에게나 해라. 이런 사기 기사를 반복해 쓰면서 타인의 땀의 대가, 노동의 대가를 착취해 밥을 먹는게 부끄럽지도 않나.
 
내가 뒤늦게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처음 올린 글이 '노론에게는 무궁한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노론, 친일파 세상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은 우리 사회 극우파들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한겨레·경향·한국일보 류처럼 겉으로는 진보, 중도를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노론사관 조선총독부 역사관 추종자들과 음습하게 결탁해서 이런 파시스트적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사이비·유사' 따위로 낙인찍어 죽여 온 흑역사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팩트도 없이 '아니면 말고'식의 낙인찍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용공 조작식 수법으로 진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을 죽여 왔던 흑역사가 노론·친일파 세상이 계속되는 구조적 이유다. 내가 한겨레·경향·한국일보 류들에게 반복적으로 '사이비·유사학자'로 매도되는 이유는 일관되게 노론사관과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진짜로' 비판했다는 점 하나 외에는 없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들어보라. 나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이런 흑역사, 즉 유사 지식인들의 사기술을 간파한 개인들이 스스로 지식인이 되어 집단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희망을 건다. 민중이 스스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국사학자들과 조선·한겨레·경향·한국일보라는 좌우 언론카르텔이 그토록 죽이자고 달려드는데도 민중들은 거꾸로 이 카르텔을 비난하고 이에 맞서는 것이다. 촛불이 이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문영과 유사역사학

무슨 소설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칭 소설가였던 이문영이 「한겨레 21(2017. 6. 26)」에는 자신을 '역사작가'라고 소개했다. 「한겨레 21」의 청탁을 받고 너무 기뻐서 인터넷에 글을 남겼는데, 유사역사학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청탁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역풍 엄청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한겨레 21」이 처음부터 마음먹고 독자들과 싸우려고 기획했다는 뜻이다. 단군 죽이기를 마음먹고 특집으로 꾸밀 정도면 순간의 일탈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가 신념이라는 뜻이다. 이문영은 "그런 건 무섭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단다. 내 주위는 대부분 책 깨나 보는 사람들인데 아직 이문영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이문영이 소설가로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역사관 수호의 전위대로 나서니 『매일경제』에서 연재지면을 주고 「한겨레 21」에서도 청탁을 한다. 역시 대단한 카르텔이다.

당초 「한겨레 21」에서는 학사출신의 이문영이 아니라 그럴듯한 대학의 교수를 필자로 섭외했을텐데 모두 내뺐을 것이다. 도종환 후보자를 맹비난하던 '한국고대사학회장 하일식, 윤내현 교수가 자신의 뒷자리를 준 단국대 심재훈, 『조선일보』에서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란 닉네임을 붙여준 기경량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청문회에 불러 멍석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모두 학회 핑계를 대며 도망갔다. 이문영이 그간 소설 인세로 몇 푼을 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소설을 본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봐서 소설가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국사학 전위대로 나서니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다. 이 신문, 저 신문에서 지면을 주고 고대사학회는 한성 백제박물관에 초청해 강연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이리 계산하나 저리 계산하나 남는 장사다.

그러니 그는 전위대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래서 적반하장은 이문영의 특징이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비판하는 것으로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를 되뇌이면서도 『매일경제』에 때로는 '심산 김창숙이 그립다' 운운의 글도 쓴다. 물론 김창숙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죽이자고 달려들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병도는 침묵하고 문정창, 박창암은 비판하고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했던 인사들을 극우파나 쿠데타 동조세력으로 모는 것은 이문영의 특기다. 이문영은 광복 후 민족사학에 전념했던 문정창에 대해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이사관)을 지낸 일제 부역자"라고 비판했다. 문정창이 일제 때 관료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광복 후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남은 평생을 사재를 털어 일제가 왜곡한 한국사 바로잡기에 바쳤다. 이문영은 이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자유』지를 창건한 박창암 장군에 대해서는 간도특설대 출신이자 5·16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박창암 장군이 박정희에게 민정이양을 계속 촉구하다가 박임항·김동하 장군 등과 반혁명사건으로 체포되어 숱한 고문을 당한 끝에 13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는 사실도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이 안 좋다.

반면 자신이 추앙하는 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른 체한다.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스승들과 함께 한국사를 난도질한 장본인이란 사실은 일단 제외하자. 이병도는 이승만 정권 때 인간백정으로 불렸던 관동군 헌병 출신 김창룡 방첩대장(중장)의 묘갈명을 썼다. 이 묘갈명에서 이병도는 "간첩오렬 부역자 기타를 검거 처단함이 근 2만5천 명"이라고 칭송했다. 김창룡이 반 이승만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 하도 많이 죽이자 군부 내 양심세력인 허태영 대령이 1956년 처단하고 사형 당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이 허태영 대령을 참군인이라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병도는 거꾸로 김창룡을 칭송한다. 이병도가 김창룡을 칭찬한 이유가 있다. 이병도는 광복 직후 진단학회에서 쫓겨났다가 1950년의 6·25사변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김창룡의 반 이승만 세력 숙청은 곧 자신의 재기의 발판이었다. 그래서 1954년 진단학회 이사장으로 복귀한다. 이병도는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국가재건최고회의 기관지 『최고회의보』 창간호에 「5·16군사혁명의 역사적 의의」라는 글을 써서 쿠데타를 칭송하고, 학술원 원장 등 각종 요직을 꿰찬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 국정자문위원에 이르기까지 이병도는 친일, 독재 미화의 삶으로 일관했다. 이런 이병도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문영은 반성의 삶을 살았던 문정창, 박창암의 전력만 극력 비난한다.

매국사학의 진정한 스승은 여전히 일본인 식민사학자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 대다수는 문정창, 박창암 등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사실도 모른 체 하고 덮어 씌운다. 일제 고등계 순사 앞잡이 수법과 유신, 5공 때 용공조작 수법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정체성이 같은 「한겨레 21」에서 원고 청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매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과 시민들 대다수는 80년대 이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로서 문정창, 박창암이란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사학계 대다수가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일이관지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고대사도 비판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비판한다. '조선총독부는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계시다!'는 고대사학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근현대사는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고대사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이른바 짝퉁 진보 근현대사학자들의 분절적, 쪼가리 역사인식도 웃기는 짓거리로 본다.

이문영의 웃기는 자화자찬은 한 둘이 아닌데 그 중 하나가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건이 있다. 이문영은 한국 역사학계는 스승에게도 반기를 들 수 있다는 사례로 설명한다. 서울법대 학장이었던 최태영 선생이 이병도를 만나서 1차사료를 가지고 설득하자 이병도가 단군을 인정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그러자 그 제자들이 최태영이 협박했다는 등 이병도가 노망났다는 등 비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일화이다. 이것이 이문영의 머리속에는 한국 역사학계는 스승에게도 대들 수 있는 사례로 둔갑한다. 이병도의 제자들이 이병도를 비판한 것은 이병도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이병도가 광복 후에도 한국사를 빙자해 니뽄사(Nippon History:일본사)를 하는 매국사학자들의 태두로 추앙받은 것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한다는 전제 내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병도가 총독부 품을 벗어나서 단군을 인정하려고 하자 그 제자들이 이병도를 짓밟고 직접 진짜 스승인 쓰다 소키치와 이마니시 류 선생님의 품안으로 안긴 사건이다. 이병도는 '니뽄사'의 큰 틀 내에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니뽄의 식민지였다는 '한국지방사'를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지 최고 책임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창한 쓰다 소키치는 백제는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건국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병도는 8대 고이왕(재위 236~286) 때 건국되었다고 100년 정도 끌어올렸다. 그래서 국정 국사교과서나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백제는 3세기 후반 건국했다고 적고 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임나는 가야의 별칭'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한 홍익대학교 김태식은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운영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측 위원이 되어 고이왕 건국설을 부인했다. 물론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서기전 18년 온조대왕이 건국했다고 볼 리는 만무하다는 사실은 이제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국민들은 다 눈치 챘다. 김태식은 고이왕이 백제를 건국했다는 것은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김태식,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2005년)"이라고 주장했다. 서기전 18년 건국이라는 『삼국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서기 3세기라는 이병도도 틀렸고, 서기 4세기 중반에 건국했다는 쓰다 소키치 선생님이 맞다는 것이다. 서울교대 임기환은 「동북아역사지도」 문제로 국회 동북아특위 진술회가 열렸을 때 이에 대한 견해를 묻자 '학계의 견해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답변해서 여야의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백제는 4세기 중반에야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세금 47억으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4세기에도 한반도 남부에는 신라도, 백제도, 가야도 그려놓지 않은 것이다. 반복하지만 5개월의 수정기한을 주었는데도 독도는 끝내 그려오지 않았다. 이런 지도사업을 중단시켰다고 「한겨레 21」에서 조선, 경향, 한국과 함께 거품을 물고 비난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가야사 지원을 비난하는 고대사학자들

만약 이병도가 최태영의 권유대로 과거를 반성하고, 이를 그의 제자들이 받아들였다면 지금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지금 한국의 사학자들 대부분은 매국사학자라는 비난 대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역사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니뽄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한국사는 니뽄사의 지방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를 제안하자 고대사 연구자들이 대거 비난하고 나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간 가야사를 빙자해 임나사를 연구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했다고 나오고, 『삼국사기』는 서기 77년(탈해 이사금 21년)에 신라의 아찬 길문이 가야와 싸워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두 서기 1세기에 가야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사를 빙자했지만 실제로는 니뽄사를 했던 고대사학자들은 4세기에도 가야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설혹 존재했어도 아주 조그만 동네국가들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2005년만 해도 한일역사연구공동위원회처럼 국민세금으로 '쓰다 선생님 만세! 이마니시 선생님 만세!'를 외쳐도 모두가 한 통속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동북아역사왜곡특위의 국회의원들과 나를 비롯한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 같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 이런 매국사업을 비판한 국회의원들과 역사학자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국뽕 3각연대'라고 거품 물고 비난한 것이다. 정확히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계 형사의 인식과 일치한다. 정치가(독립운동가), 역사학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야 말로 일제 고등계 형사들이 기를 쓰고 죽이려던 존재들이 아니었나?

매국사학자들은 이병도가 매국사학을 추종할 때만 태두로 모신다. 감히 쓰다 소키치 선생님, 이마니시 류 선생님을 넘어서려 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문영은 역사학계가 스승에게도 대든 사례로 든다. 희한한 머리구조다.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의 출처와 『환단고기』

학부 출신의 이문영이 교수 출신의 매국사학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유사역사학'이라는 용어를 따온 것이다. 그가 고안했다고 하지 않고 따왔다고 하는 이유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용어를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조선총독부 만세가 가득 차다 보니 조선총독부식으로 사고하게 된 듯하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의 유사종교(朝鮮の類似宗敎)』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천도교, 동학교, 단군교, 대종교, 보천교, 증산교 등의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로 꼽아 탄압했다. 또한 미륵불교, 불법연구회 등의 불교단체도 '유사종교'로 꼽았다. 지금 매국사학에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면 학위가 있어도, 없어도 '유사사학자'로 모는 방식과 완전히 같다.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 천황폐하와 조선총독 각하들은 영원히 우리의 앞길을 지도하신다!"는 충성선언의 무한반복이다.

이문영이가 나섰는데 『환단고기』에 대한 비난이 빠질 수 없다. 이문영은 「한겨레 21」에서 "이덕일은 초창기에는 약하게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주장했지만 최근 세계환단학회(2016년)에 나가서 <환단고기>의 역사성을 주장하기까지 했다."라고 글의 끝을 맺었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나를 『환단고기』 추종자로 몰기 위해서 광분한다. 그러나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 범례에 따르면 '홍범도, 오동진' 두 독립운동가가 출간자금을 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진위 논쟁은 앞으로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오랜 시간을 두고 검토할 문제지만 매국사학자들처럼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다 죽여야 한다’고 거품을 물 책은 아니다. 『환단고기』에 대한 내 생각은 추후 자세히 밝힐 것이지만 한두 가지만 미리 말하겠다.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지 애미를 잡아먹었는지, 지 애비를 잡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극도로 저주한다. 박노자도 「한겨레 21」과 인터뷰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저주를 늘어놓았다. 나는 어떤 책이든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위판정은 다양한 역사학적 방법론을 사용해 『환단고기』를 교차검증한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1911년에 편찬되었다는 『환단고기』에 수천 년 전의 내용이 적혀 있으면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검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매국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대한 검증 자체를 거부한다. 학문의 다양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일제가 한 세기 전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대하는 자세와 같고, 유신, 5공정권이 맑스의 『자본론』을 대하는 자세와 같다.
 
2016년에 세계 환단학회에서 기조강연을 부탁하기에 나는 기조강연보다 논문을 써서 발표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논문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문영은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학문적 분석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역사학계의 학문적 분석을 하나만 살펴보자.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잠청배(潛淸輩)'라는 용어가 나온다. 『단군세기』는 고려말 공민왕 때 이암이 썼다고 전해지는 책이다. 물론 실제 그런지는 더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환단고기』 위서론자인 박광용 교수는 '무서운 아이들'의 본거지인 『역사비평(1992)』에 실은 「대종교 관련문헌에 위작 많다」는 논문에서 '잠청배'라는 용어를 위서의 근거로 들었다. 박광용은 이를 "'청에 내통한 무리(潛淸輩)'로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이 서술은 1894년 이후에야 가장 적절하게 맞는 개념이다"라고 비판했다. 잠청배를 '청에 내통한 무리'라고 해석해 놓고 위서의 근거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민족사학자였던 임승국은 『한단고기(1986))』의 번역·주해에서 이를 "잠(潛)이나 청(淸)과 같은 무리"라고 해석했다. 잠청배는 고려 중후기 때의 간신인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을 뜻한다는 것이다. 1986년에 잠청배의 뜻을 풀이한 주해서가 나왔고, 꽤 많이 팔렸건만 읽어 보지도 않고 1992년에 덮어놓고 비판하다가 큰 망신을 당한 것이 이문영이 말하는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역사학계의 학문적 결론이란 것이다.
 
지금 『환단고기』를 보는 자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주창하는 학자들 가운데 『환단고기』를 정독해 본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매국사학자들이 공부 안 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왜 저 사람들은 공부 안 할까요?"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배운 것이 틀렸다는 내용이 나오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자신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나요?" "평생 안 하던 공부 지금 와서 하겠어요?" 이처럼 공부 안 하는 학자들, 한국사를 빙자한 니뽄사를 한 학자들이 자신들의 밥 그릇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에 언론카르텔이 가세한 것 작금의 상황이다. 그러니 언론의 영향력이 계속 추락하는 것이다. 매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밥줄이니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 조선, 경향, 한국일보도 매국사학이 자신들의 밥줄인가? 수많은 독자들, 수많은 광고주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아직도 조선총독부 만세를 외치는 저들의 역사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살을 베고 뼈를 깎는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독자들은 카르텔 언론들의 역사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보도 내용도 무조건 부인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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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7 [15:20]  최종편집: ⓒ 환타임스
 
너희들이 정신 차리려면 100년은 cshin9999 17/08/28 [20:03] 수정 삭제
  너희들이 정신 차리려면 100년은 지금의 일본 아베총리의 할아버지가 815패망으로 한국식민지 총독부를 떠나면서 남긴말 이다 100년이 지나야 정신이든다. 나는 이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가 망치로 맞은듣 아찔한 마음이 들었다. 너희가 815광복절은 있지만 아직 광복은 되지 못했다. 라는 말을하고 싶다. 우리가 우리힘으로 힘이란 실력으로 나라를 되?은 것이아니다 그냥 내손에 떨어진 것이며 일본 식민시절 빈틈없이 조직적으로 한국민족정신을 뿌리채 뽑아버린뒤에 몹쓸 인간들로 교육을 했던 기록도 있다. 만나면 헐뜯고 잘난 사람끌어 내리고 돈좀생기면 도박하고,잘난척 하느라 고급차와 고급주택소유 모든 우리국민의 단점들이 일본 치하에서 계획적으로 어린애부터 가르친 결과라는 걸 깨닫는 한국인이 이제껏 왜 없었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광복, 진정한 독립이란 너희들이 제 정신,민족정신이들고, 각자가 실력을 갗추어 주변을 밝히고, 주변 이웃 국가에게 빛이되는 일을 행할때가 되어야 광복을 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할 일을 했을때 우리가 행복하고 빛이난다. 그 첫째가 가정의 행복부터 시작이다 우리의 할일을 해야 한다고하니까 뭐 나라를위해 엄청난 일을하는줄 알지만 당장네 배우자와의 관계부터 해결할 실력을 갗추어야지 대학,대학원 박사가 되면 뭘할까 니 가정하나 챙기지 못하는 주제에 빛나는일을 한다는건 헛 소리다. 그리고 밖에나가서 옛날 억울했던 이야기로 남들을 질타하고 자신의 나라를 헐뜯고 남의 나라를 욕하고 길바닥에 누워 있으면 누가 우리나라를 건져 줄까? 그시간에 네 실력을 쌓아서 힘(돈과지혜)을 길러 배우자를 편하게 만들고,사회를 안정시키면 나라가 바로선다 그후 이웃 국가의 어려운 문제까지 우리가 우리의 실력으로 도와주는 국민이 될때 우린 진정 독립국가가 되고 이웃에 존경받고 이웃 나라에 존경받는 국민이 된다. 우리의 할일도 못하고 무슨 광복절 기념이라고? 아직도 빨갱이 파랭이 구닥다리 이념속에서 지랄들 하는 무식함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실력이 향상된다. 지나간일은 반성하면서 우리의 실력을 증진하기위한 에너지로 써야 한다 지난날 억울함으로 오늘을 낭비하지 마라 이말은 개인 에서부터 시작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없어서 가진 수모를 당했던 지나날을 되풀이 하지 않기위해 결속하고 단결하고 남을 탓하지 말고 우리 할일을 충실히해서 함께 힘을합쳐 주변을 이롭게 하면서 살아 갑시다. 주변의 힘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결국 주변 이웃국가를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한국인이 되어야 우리 조상님의 원한을 풀게 해드리는 것이다 감옥에서 피눈물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은 우리손에 달려 있다. 뉴저지 상록학교교장, 뉴저지 흥사단 지부, 신충식 2014178861 신충식컬럼 구글검색 chungshikshi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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