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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오늘은 신의 날이었다
현정수의 수행소설 '파라가테'<25>
나의 성허는 이층에서 영원에... 나는 아래층에서 나의 신 성허에 잠겨
 
현정수
신부님의 식사 전 기도에 신자들이 합송하는 것으로 만찬은 시작이 되었다. 식탁은 진기한 음식들로 가득했다. 고인의 글씨가 이뤄낸 서체의 품격과 도에 대해서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극찬을 하며 특히 과거 동료교수가 회고하여 고인을 이르던 고인의 지나간 인간됨에 대해선 모두들 동조의 눈빛을 가지고 경청을 했다.

「보통 서예 개인전은 한 60여점 정도의 작품을 가지고 개최를 하게 되는데 물론 더 크게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정도로 한다고 할 때 인사동 화랑 정도라면 비용이 한 3천만 원 이상이 들어요. 교수님이야 유작이 상당하시니까 뭐... 사모님 의중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제 생각으론 1차 2차 3차로 나누어서 일정 기간의 텀을 가지고 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

서예가의 의견에 이어 동양화백이 말을 했다.

「석경선생 말씀도 일리가 크지만 제 생각으론... 교수님은 남종문인화의 현존했던 대가로서 이미 추사의 맥을 잇는 그 명성도 자자하고, 별세하신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그 아쉬움이 대중들의 마음에 크게 남아있을 때를 빌어 아예 크게 한 번 도모해보시는 건 어떨까도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몇 백점을 수용할 큰 화랑도 있기는 한가요?」

고모님의 물음이었고 서예가 석경 선생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럼요, 덕수궁 미술관도 있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등 뭐 인사동에만도 인사아트센터, 덕원 갤러리, 선화랑 등 꽤 많지요. 하긴 예암 선생의 말씀대로 한꺼번에 추모전을 대규모적으로 치루는 것도 의의는 있습니다마는 보통 그 경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비싼 대관료와 기타 경비가 작품 판매비로 모두 충당이 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부분이 저어돼서 그렇지요 뭐. 그것만 문제가 안 된다면 예암 선생의 의견이 정말 좋기는 한데...」

「스테파노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금파 선생은요?」

「작품 처분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두 분 전문가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데요? 저야 뭐 그 방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신부님에 이어 예암 선생이 말을 받았다.

「그게 참... 현재 국내에서의 문화적 추세라는 것이 물론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표하고 부분적으로 호응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마는 시류가 워낙 다른 소모적인 곳으로 흐르고 있다는 실정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라서... 보통은 작가의 인맥에 의지해서 작품을 처분하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이것은 뭐 사두었다 해도 역대 유수한 세계적 작가의 작품들처럼 투자성이 있어서 날이 갈수록 프리미엄이 붙는다든가 그렇질 않으니... 한국에선 아무래도 일종의 복부인이라 할까 그 유한층에게 모종의 투자대상이 되질 못하고선 기획이 마이너스로 끝나게 될 공산이 있는 편이죠.」

「아, 그건 뭐 염려 않으셔도 돼요. 작품 처분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추모 기념전이니까요.」고모님의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러면 대관료 등 부대비용까지 억을 호가하게 될지도 모르는 데도요?」

고인의 과거 동료교수는 미간에 주름까지 모으고 심각해지는 것이었다.

「그건 뭐 내가 동생을 기념하는 의미와 또... 일반 대중들에게 문화를 보급하는데 일조한다는 기쁨으로 쾌히 치룰 수 있어요. 그리고 작품 처분 문제는 아마... 우리 애 아버지가 도움을 주실 수도 있구요.」

「아! 그러면 뭐 크게 추모전을 하시는 것도 의미가 큽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만큼 작품을 묵혀두지도 못할뿐더러 비용과 처분 문제에 그렇게 담대할 수도 없어서... 정말 부럽습니다.」

석경 선생의 말이었다.

그 외의 세부사안에 대해서까지도 토의는 이어졌고 그렇게 대강 추모전에 대해서는 윤곽이 잡혀 들어가면서 식사는 거의 끝나가 후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클라라, 이번 음악회는 정말 감동적이었어. 언제 그렇게 컸는지... 첼로를 들 기운도 없어서 쩔쩔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하하, 참 훌륭한 달란트를 받았어. 그렇지 클라라? 내가 클라라 첫 영성체 신부 아니요, 하하하.」

「네, 신부님. 늘 빼놓지 않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에... 너무 감사해요, 신부님.」

「어디 우리 클라라 양 연주 한번 여기서 들어볼 수 있을까?」

「네, 안 그래도 초대해 주신 것에 답례하기 위해서 악기를 가지고 왔어요. 반주는 누가 하지요?」

「아유... 클라라, 내가 이런 명사를 다 알다니! 이래서 내가 클라라를 사랑한다니까. 내가 못 치는 피아노 실력으로 반주를 해봐도 될까?」

고모님의 기쁨에 찬 소리에 이어 클라라 장은 일어나 악기를 꺼내 페그를 감아 겹선으로 A음을 그어 튜닝을 했고 고모님은 악보를 전해 받아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고모님에게 그런 예술적 조예가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교수님의 서도(書道)나 비근하게는 정원손질 그리고 그 개성에 찬 실내장식을 미루어 본다면 이 가문에 흐르는 기품과 예술적 자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 모두는 환호했다. 선택한 곡은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였다. 갑자기 실내가 경건하고 감동에 차기 시작했다.

콜 니드라이, 신의 날이었다. 내게도 오늘은 신의 날이었다. 이 히브류 옛 성가의 선율을 변주하여 이토록 아름답게 작곡해낸 부르흐에게 나는 고개 숙여 감사드렸다. 그 비통하고 장엄한 선율은 너무도 극에 달한 진실의 값으로 그토록도 아름답고 쓸쓸했다. 특히 운 포코 피우 아니마토로 이끌어 아르페지오로 강한 힘을 실은 고모님의 반주에는 전율이 일었다. 아아, 그 감동! 나의 성허는 이층에서 영원에 잠겨있고 나는 아래층에서 나의 신 성허에게 잠겨있었다. 고(苦)라고 하지만 삶이란 어찌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일까. 오오, 너무도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한 우리 삶의 모든 진실들이여... 그는 내게 모두를 섬기라고 했다. 그것은 성허의 법(法)이 내게 임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렇게 되었어야 할 더욱 마땅한 법이 아니었던가. 아아, 성허... 나의 신이여...

나는 감동에 차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에게서 받은 은총의 연장선 속에서 내 속에 가득 차있는 고질적 교만을 정화시키는 숙연한 시간이 되었다. 나를 이끌어 여기까지 이르게 한 성허 그는 누구인가.

동양적 정서가 비애스럽게 물씬 배어있고 쓸쓸하여 비탄을 일게 하는 로맨틱한 속죄의 노래, 바벨의 이산과 혼돈에 애통하는 자를 위해 눈물 흘리는 그 환상적 선율은 성허를 향하는 내 마음을 극단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연주는 맑고 강한 느낌의 피아노 선율에 이어 독주 첼로의 변주형태로 조용하고 쓸쓸하게 끝이 났다. 모두가 갈채를 보내고 경탄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용한 감동이 내부적으로 굽이치던 나의 그 느낌을 거기 누군들 모를 수 있었으랴.

그리고 아무도 먼저 입을 떼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선율의 감동은 파급이 큰 것이었다. 대체 이 신앙심이란 무엇일까. 나는 감히 신앙을 미개한 인간의 대자연을 향한 패배의식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내가 성허를 신앙하는 것도 성허에 대한 패배의식이란 말인가. 사랑이 패배의식이란 말인가. 나는 생명과 신앙에 대한 내 치졸한 의식이 부끄럽기 한량없었다.

고인의 과거 동료교수인 석교수가 입을 뗐다.

「금파 선생, 실물로 뵈니 더욱 아름다우십니다. 저는 늘 글로써만 뵈어서 상당히 강한 느낌을 주실 분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으시네요.」

나는 고개 숙여 겸양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스테파노 老 신부가 웃으며 입을 뗐다.

「선생은 교회 안 나가시오?」

마치 교회를 안 나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일순 지나갔다. 역시 나는 고개 숙여 목례를 하고 그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신문에서 봤어요. 거 올바른 말 쓰셨더라고. 음... 맞는 말이야.」

고모님의 눈초리가 휘둥그러지며 내 쪽을 흠칫 지나가곤 다시 老 신부를 바라봤다.

「그런데 선생 말씀마따나 종교제도권 안에도 올바른 수행자는 많아. 음... 많아. 그렇지만 개혁의 물결이 일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 요즘 그 거친 성령운동 말고 진정한 내면의 운동이 일어야 하는 게 맞어.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도 맞고. 음... 맞는 말씀이야.」

「그럼 창세기 말씀은 어찌 해석해야 하는 건가요? 에덴동산이라든가...」

석경선생의 말이었다.

「그건 하나의 관념이요. 여기 뭐 모두 지성인들이 모였으니 성직자로서 꽤나 진보적인 내 생각을 노출시켜도 제법 될 것 같은 판단이 들어서 하는 말인데, 물론 종교란 논란의 대상은 아니요만 그리고 종교사적인 측면은 이미 역사비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이고, 금파 선생도 다름 아니라 인간의 신앙심의 원류나 신앙행위의 바른 길 등의 주안점을 가지고 글을 쓰신 걸로 내가 아는데 그 생각엔 오류가 없어요.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고 老 신부는 침묵했다. 사람들은 모두 침묵 속에서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고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오늘 이전의 나라면 아마도 정중하거나 겸손하게나마 나의 생각을 분명하게 피력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변한 것이다. 성허의 품속에서 나의 내부는 일대 새로운 변혁이 이루어지고 만 것이었다. 나는 오로지 부끄러웠다. 그리고 듣지 않아도 그 老 신부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네, 문제가 되는 것은요... 거기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암 선생의 말이었다. 신부는 어떤 생각에서 막 깨어난 듯한 눈길로 좌중을 둘러보더니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 인자함이 깃들여있었다. 또 한번 老 신부가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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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24 [09:50]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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