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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현정수의 수행소설 '파라가테'<24>
나는 그에게 나의 죄 없는 육신을 통 털어 아낌없이 순교하고 싶었다
 
현정수
11.

기자가 돌아간 일요일 다음날엔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었다. 원고는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이미 그것이 내 마음에서 발현된 파동이라면 그것이 기사화되든 그렇지 않든 분명한 실효성을 가지고 존재계를 떠돌게 될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그럴진대, 비록 그 기사로 인한 소요가 얼마간 예상될지라도 이제 어쩌겠는가. 나는 단숨에 그 기사를 읽어 내리곤 이내 잊어버렸다. 사실 내게 있어서 신문기사란 그 시절의 대단한 사회문화적 이슈를 제외하곤 정말 이렇다하게 관심을 끌 요소가 많질 않아서 우편물로 송달되는 시사월간지 정도에서 눈에 띄는 타이틀이나 읽어보는 습관이 들어버린 지가 꽤나 오래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비난어린 반대기사가 타 신문에 났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강 기자를 통해서였다.

기사화 된 나의 글 중, 신앙심의 근간은 공포와 패배의식으로써 그 원류는 미개한 감정에서 시초한 것이라는 의미와 기독교가 인간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어 인간의 의식을 더욱 크게 분리시켜왔다는 점 그리고 유일신 사상과 조상신과의 영적 수준의 차이점은 종교집단의 주관적 인식의 문제라는 점 등을 들어 장문의 논단을 기고한 교수이자 목회자인 某 씨의 기사는 명문이었다.

나에 대한 공박의 요지는,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수긍하지 않는 위험한 발상으로써 작가 금파는 ‘인간이란 선택받은 존재’ 라는 출발근거를 부정하고 그 기원을 원숭이에 두고 있는 졸렬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 이었다. 내가 주장했던 인간의 패배의식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신앙심의 출발은 신에 대한 감사와 헌신이라는 지성적 자세였다는 것을 금파는 다시 한 번 깊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기독교란 전쟁을 종식시키고 인류를 평화로 이끈 위대한 사상이자 특별한 은총일뿐더러 그것은 예정된 신의 안배 속에서 마땅히 일어난 위업” 이라는 것이었는데, 행간에 감추어진 격노함은 한 눈에도 그 파동의 굽이굽이를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특히 그것은 “기독교를 그저 한갓 이스라엘의 민족 신앙으로 폄하시킨 작가의 무지함” 이라든가, “무속인과 기독교 성직자를 등가(等價)로 치부하는 작가에게서는 기독교계에 맺힌 원한마저도 읽을 수가 있었다.” 라는 표현 등으로 비난의 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교계나 사회에 反금파적인 반향을 선동하려는 경향마저 드러난다고 봐도 지나칠 건 없었다. 이것은 필경 평신도의 2차 비난으로 배턴이 이어질 것이었다. 그는 내 문장의 예를 들어 말하기를 “작가는 ‘유일신 사상과 조상신과의 영적 수준의 차이점은 종교집단의 주관적 인식의 문제인 것이라서 수준의 차이가 있다 해도 그건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중들은 자신의 믿음을 담보로 신에게 건강과 행복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가 일쑤’ 라고 하는데, 이것은 실로 기독교 유일신에 대한 교만한 도전이요 기독교계의 진실한 신앙적 수행의 길에 대한 모독이며 더욱이 대중의 지적, 영적 수준을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된 화살이다. 작가의 지성에 극심한 충격과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라고까지 썼으니 그 주장을 등에 업고 평신도 대중이 불처럼 일어날 것도 자명했다.

내가 원고를 기선에게 넘기고 가졌던 우려는 이렇게 가시화돼서 나타났다. 이 파장이 어디까지 어떻게 연결되고 파급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한번의 기사로써 바람이 잘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성직에 있다고는 하나 자연과학의 기초에 대해서조차 철통 같이 폐쇄적인 그 교수 밑에서 또 다른 목회자가 배출될 거라고 생각하니 비감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어쩌겠는가. 나는 내 생각에 내 나름의 소신이 있었다. 아울러 교계의 은폐된 비행이나 해이해진 구조적 모순을 점검조차 하지 않는 듯한 그 성직자의 아둔한 자세에서 오히려 나는 기름진 교만만을 읽게 되는 것이었다. 우선 기업화가 되어가는 종교계의 실상과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세찬 성령운동 등은 정법의 눈으로 그 진실성을 재삼 진단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었던가.

그건 어찌 되었거나 예정된 수요일 오전부터 나는 설렜다. 오랜만에 보게 될 나의 소년 성허에게 무엇이든 그가 기뻐할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나는 그간 이 산간을 스케치한 여러 장의 그림 중 목탄으로 그린 그의 집을 한 장 골랐다. 만발한 철쭉 옆에 덕구가 뛰어오르고 어여쁜 이층 양옥의 울타리는 찔레로 뒤덮여 산자락을 어깨에 두른 채 하늘이 배경되어진 그림이었다. 수채화로 그릴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그대로 조심스레 액자에 끼워 넣었다.

기자에게서 들은 말론 소년의 고숙은 정부 모처의 고위 공직자라고 했다. 초대된 손님들은 고인의 후배 서예가, 동양화백, 고인의 과거 동료교수, 고모님의 본당 신부, 그리고 고모님의 교우로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유명한 첼리스트까지 모두 다섯 명으로 각계의 명사들이라고 했다. “금파선생까지 오시게 되니 작가까지 참여해서 정말 다양한 모임이 되겠네요. 내가 영광이지.” 웃으면서 고모님이 말했다.

고모님 댁에 도착한 것은 정해진 시간보다 다소 이른 시각이었다.

「아유... 먼 데서부터 이렇게 귀하신 분이 오셨네. 잘 왔어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어. 그래 거기서 홀로 지내시기가 만만찮지? 도로 서울로 올라오시지 그래. 참 대단한 분이야. 우리 같으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렇게 산중에서 홀로 지내기는 어려울 거야. 무섭지도 않아? 더욱이 앞집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글 쓰는 분들은 좀 이해 못할 데가 있어. 가족들은 모두 여기 서울에 계시지요?」

나는 그 쏟아지는 고모님의 말들에 인사할 경황도 찾기가 힘들었다.

「네에... 그간 안녕하셨어요? 저까지 이렇게 불러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이제 안정이 좀 되신 건지... 교수님 가시고서...」

「말두 마아... 내가 동생이라곤 그거 하나 딸랑 있는데 그렇게 한스럽게 갔으니... 후유... 어떤 땐 잠도 안 오지 뭐. 그런데 쟤가... 하나 밖에 없는 조카 녀석이... 나는 쟤한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안 그래도 금파선생한테 조언 좀 들으려고 내가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나야 뭐 동생이나 제대로 알지 조카에 대해서야... 아이가 영민하고 참하다는 정도와... 하여간 근데 이제 보면 쟤는 상대하기가 너무 어려워... 어렵다는 건 뭐 까다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뭐랄까... 하여간 금파선생, 앞집에서 가까이 살았으니 우리 저 애한테 대해서 뭘 좀 아시는 게 있어요?」

고모님의 곤혹스러움에 대해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우선 고모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더욱 말문을 떼기가 어려웠다.

「네에... 그냥 일반적인 시각으론... 이해하기가 좀...」

「아니 그럼 사람이 사람을 보는데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면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한단 말이야? 대체 내가 저 아이한테 어떻게 해줘야 잘 하는 거야? 통 말도 없고 활동도 없고... 말을 거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니 원... 나는 동생을 대신해서 잘 길러보려고 데려오긴 했지만 내 한계 밖에 있는 것도 같고... 여기에 그대로 놔두는 건 오히려 쟤한테 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뒤에도 산이 있건만 통 문밖출입도 안하고 고작해야 정원이나 거니는 정돈데 산에서 오래 지내서 그러나? 오히려 우리 인간들보다는 무슨 나무나 꽃 새 이런 것들하고나 친하고 말이야. 그래도 이상한 건 말이지 그냥 든든하다는 거야. 정말 이상하게 참 든든해... 그건 왜일까?」

「그거야 그냥... 고모님 마음이시죠 뭐...」

「아니! 그렇지가 않아. 이건 분명한 건데... 뭐랄까... 어떤 알 수 없는 위엄이랄까... 아무튼 나도 모르겠어. 난 우리 집 그 양반도 저렇게 위엄 있게 여겨진 적은 없었거든. 쟤 고모부는 그냥 한 마디로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야.’ 라고 일축하시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느낌이 스며있다는 걸 나는 알 수가 있어요. 그뿐 아니야. 우리 일봐주는 저 사람 있잖아 저이는 자기 지병이 다 낫다고 그래. 그냥 한번 스친 것만으로 말이지. 그걸 어디다 대고 말을 하겠어! 내가 말이야 오늘 우리 본당 신부님도 초대를 했어요. 성직자에게 한번 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전에 교수님도 성직자들에게 보인 적이 있었다고...」

「그래? 그래서?」

「교수님도 무척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그냥... 아무 도움이 안됐다고 말씀하셨어요.」

「아, 말도 말아요. 산에 내려갈 때도 친척들 간에 얼마나 말들이 많았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아니 그 교수직은 왜 그만 두나. 그리고 서예야 뭐 여기선 못하냐구! 하여간... 그런데 금파선생.」

「네?」

「엊그제 신문 문화면에서 선생이 쓴 글 읽었어요. 우리 일반 신도들로써는 충격적인 글이었거든. 나도 많이 생각해봤어요. 근데 논리적으로는 상당히 공감이 가아.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창세기를 통한 신과 인간의 관계라든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부분에서는 종래의 사고에 혼란이 오는 게 사실인데 설령 진보적 사고의 성직자가 그 생각을 지지한다고 쳐도 겉으로까지 옳다고 찬표를 던지기는 힘이 들것 아냐? 안 그래요? 그 다음날 다른 신문에 그 누구지? 신학대 교수님 말이야, 그분 글이 실렸을 때는 나는 가슴이 덜컥하더라구. 참 사람이란 묘하지. 내가 언제부터 금파선생을 내 식구처럼 여기게 됐는지 글쎄 진짜로 내 동생이 스캔들을 탄 것 같은 노파심이 들게 되니 정말로 나 같은 신도들이 바로 선생이 지적한 그 기복신앙에 머무는 일개 평신도지 뭐야!」

고모님은 성격이 밝고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품 있는 얼굴에 비해선 소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 외형은 소년의 아버지와 사뭇 흡사한 것이었다.

「이거 봐, 지금 금파선생이 여기 온 걸 쟤도 알고 있을 거거든. 근데 안 내려오잖아. 도무지 세상일엔 관심이 없다니까. 한 번 올라가 보실래요? 이제 한 시간쯤 있으면 손님들이 오실 거야. 그 동안 얘기나 나누고 있어요.」

이층은 아주머니가 얘기한대로의 정경 그대로였다. 방문을 노크를 해도 기척이 없어서 나는 살그머니 문을 열어보았다. 아아... 석양을 마주하여 서있는 그의 뒷모습은 우리의 상상 속으로부터 현출된 신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분명한 건 이제 그는 소년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오오, 나의 성허... 조용히 소리 안 나게 문을 닫고 들어서는 나의 출현을 모를 리 없건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로지 부동의 자세로 석양을 마주하여 서있을 뿐. 나는 어쩌다가 미끄러지듯 외계로 들어와 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색할 것도 없고 부당함은 더욱 느껴지지 않는 그 자연스런 시공간. 중력조차 지배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풍의 중심 속에서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만 것 같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준비가 되어있질 못했다. 그가 자신의 행동반경을 극도로 제약시킨 것은 어쩌면 타인을 위한 배려였던 것일까?

내가 깨어난 건 그의 품속에서였다. 아아, 그 황망함에 비해서 그러나 그 안온함은 결코 벗어나고 싶지 않아 존재의 모태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오... 나의 죄 없는 눈망울은 그를 향해 말없이 신앙을 고백하고 나의 성스러운 청년 성허는 그의 품에 안긴 나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금파... 그대는 나를 따라올 수 없어요.」

이건 무슨 말일까. 그의 경지를 말함인가, 아니면 그가 가는 길을 말함인가. 아아, 그는 왜 나를 붙들어주질 않는단 말인가... 순교. 나는 그에게 나의 죄 없는 육신을 통 털어 아낌없이 순교하고 싶었다. 거기가 어디라면 어떻단 말인가. 하지만 신의 성역이란 아무나 들어갈 순 없을 것이라는 깨우침에 나는 더없이 서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어머니를 원망했다.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 했다. 이 흐르는 눈물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육신의 이별 그것과는 다른 이별이 언젠간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점은 전혀 다른 슬픔을 자아내게 해요. 그러나 그것은 모든 슬픔을 초월하는 막강한 환희인 거예요. 존재의 바다에서 파도로 출렁이다가 파도치기를 멈추고 영원의 심해에 잠긴다는 것은 존재행위의 궤적을 일거에 지우는 아픔이죠. 그러나 그것은 초극(超極)의 환희예요. 금파, 나는 그대를 두고 가요. 부디 모든 것을 섬기세요. 모자라는 사람과 너무 넘쳐서 불행한 사람,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그리고 뿐만 아니라 미물까지도...」

그가 내게 전수한 법이었다. 단지 모든 것을 섬기라는... 일체 분별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섬기라는 법(法). 아아,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무당이면 어떻고 사이비 성직자라면 어떻고 기(氣)장사꾼이라면 어떻단 말인가. 불문에 들어 뒷방에서 몰래 기름진 육식을 하는 배 두둑한 사이비 승려면 어떻고 강간범이라면 어떻단 말인가. 세상은 스스로 질서를 잡고 스스로 정화를 시켜가는 또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 아니었던가. 내겐 그 신학대 교수마저도 섬겨야 할 대상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이중인격자에 시정잡배라 해도...

「그리고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그는 수십 년 묵은 나의 총 관념을 아니 억만 년은 묵었을 내 아스트랄의 총 체계를 말 한 마디로 부서뜨렸다. 그리고 나는 길지 않은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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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21 [09:37]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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