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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남기고 갈 것인가
<덕산의 德華滿發> 돈 뭉치를 입에다 한 다발 물고 죽으니...
상생의 선연, 보시공덕, 청정일념... 저승길 두려움 없으리
 
김덕권
우리가 저승에 갈 때 무얼 가지고 갈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만약 가지고 갈 것이 마땅치 않으면 나의 일생이 얼마나 허전할까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습니다. 표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간다 하였지요. 

조선시대 말엽에, 경상도 경산에 ‘김해생’이라는 만석꾼 부자(富者)가 살았습니다. 그는 소문난 노랑이(구두쇠)라서 밥상에는 언제나 보리밥에 된장국뿐이었습니다. 어쩌다 쌀밥에 생선이라도 올라오면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먹다가는 집안이 망한다! 망해!” 하며 호통을 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주인에게는 꽁 보리밥을 따로 지어주고 자기들은 몰래 쌀밥에 고깃국을 먹습니다.

‘김해생’은 한 평생 재산을 늘리기 위해 돈의 노예로 살았고, 수많은 재물을 모았으나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시에 저승사자가 찾아왔습니다. ‘김해생’은 깜짝 놀랐으나 그렇다고 수많은 재산을 그대로 이 세상에 다 두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갑 속에 감추어 두었던 돈 뭉치를 꺼내어 양 손에 한 다발씩 꼭 움켜쥐고 입에다 한 다발 물고 죽었습니다. 

자식들은 울며, 장례를 지내야 하는데 장례비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손에 꽉 쥐고 있는 돈을 빼려고 해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돈을 시신(屍身)과 함께 묻기에는 너무 아까워 결국 손가락을 자르고 이빨을 뽑아 버리고 빼내었습니다. 이승에 올 때 빈손으로 왔다가 저승으로 갈 때 빈손으로 간다는 이치를 알면서도 재물에 대한 집착(執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지요. 

프랑스에는 ‘알버트’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알버트 까뮈(Albert Camus, 1913~1960)’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이지요. 까뮈는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반항적인 인간’, ‘오해’, ‘계엄령’ 등 수준 높은 작품을 썼고 1957년에는 ‘전락’이란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신학자요, 철학자며, 음악가요, 의사였습니다. 수바이처는 프랑스 식민지인 가봉에 건너가 원시림 속에 병원을 세우고 흑인의 벗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헌신의 봉사로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요. 

두 사람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분들입니다. 또한 그와 걸맞은 이름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남긴 것은 서로 다릅니다. 까뮈는 노벨 문학상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좋은 별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생을 즐기며 편안히 살다가 교통사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 상금으로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과 수용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생을 봉사했지요. 두 사람은 지금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별장과 병원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까뮈의 명성과 재능에 비해 그가 남긴 별장은 어쩐지 아쉬움과 애석함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 슈바이처가 남긴 병원과 행적은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하지요. 우리도 내 삶이 끝나는 날,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요? 

미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 1917~1963)는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네 가지 역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고 말했습니다. 

               첫째,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둘째, 당신은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가?

               셋째, 당신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았는가?

               넷째, 당신은 무엇에 당신 자신을 헌신했는가?

만약에 우리가 죽음 앞에 섰다면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기억할까요? 우리가 세상에 와서 살다가 일대사(一大事)를 끝마치고 고향으로 돌아 갈 때 가져가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상생의 선연(相生善緣)이요, 둘은 보시공덕(布施功德)이며, 셋은 청정일념(淸淨一念)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공덕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두고 행동을 합니다. 

그 원칙의 첫째는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닦은 바가 크지 않으니 바보처럼 사는 것입니다, 조금 밑지며 사는 것이지요. 둘째는 가능한 한 무조건 베푸는 것입니다. 그 베푸는 방법은 정신 ? 육신 ? 물질로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앉아서 말로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조직이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온 몸을 던져 일합니다. 

어쨌든 공덕을 짓는 데는 다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심공덕(心功德)입니다.

남을 위하고 세상을 구원할 마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널리 대중을 위하여 기도하고 정성을 들입니다. 마음으로라도 남 잘 되라고 빌어주면 그것이 공덕이지요. 

둘째, 행공덕(行功德)입니다.

자신의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작용으로 덕을 베풉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로 보시(布施)를 행하며, 실행으로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이 없으면 몸으로 하는 것이지요. 

셋째, 법공덕(法功德)입니다.

대도정법(大道正法)의 혜명(慧命)을 이어 받아 그 법륜(法輪)을 굴립니다. 그러니까 정신 ? 육신 ? 물질로 도덕회상(道德會上)을 크게 발전시키는 공덕이지요. 이 법 공덕이 공덕 중의 으뜸이라고 하네요. 

이제 우리가 저승으로 갈 때 ‘무얼 남기고 갈 것인가’ 결정하셨나요? 상생의 선연, 보시공덕, 그리고 청정일념 이 세 가지임을 가슴에 새기고 행하면 저승길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이유가 없지 않을 까요! [덕산 김덕권 원불교 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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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19 [15:42]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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