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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한글, 훈민정음-한글의 문장구조
'제 2회 천부경의 날'학술대회 발표 논문 '소리철학으로 본 천부경'<5>
박정진 철학인류학자 - '소리철학, 포노로지를 제안하며'/소리의 시대로
 
박정진
4. 소리와 한글, 훈민정음

-기(氣)문명체계의 복원을 위하여-

1) 한글의 문장구조


한국 사람은 왜 자신의 말의 어순을 강하게 고집할까. 어쩌면 그러한 어순의 글이 고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조 세종조에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문자도 없는 말의 체계(어순체계)를 어떻게, 왜 유지해왔단 말인가. 아니면 왜 그 어순체계를 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그 고대 한글체계(또는 한글 어순의 한문체계)가 한문체계(한문어순)에 의해 압도당했지만 그 종래의 어순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고대 한문은 종종 한글의 어순으로 읽어야 뜻이 더 잘 통하는 까닭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문체계란 중국 한족이 동아시아를 제패하면서 동이족의 고대 한글체계 또는 한글어순의 한문체계(목적어+동사)를 한문어순의 한문체계(동사+목적어)로 바꾸어 버린 것은 아닐까?

한국 사람들은 바로 그 바뀌어 진 문자체계에 적응하느라 이두, 향찰, 구결, 토를 다는 부산을 떨었던 것은 아닐까. 영어는 주어 명사와 동사를 강조하고 한글은 목적어 명사를 강조하고 한문은 동사를 강조한다. 이것은 분명히 중요한 사실은 암시하고 있다. 영어는 움직임을 중시하되 주체를 더욱 강조하고 한문은 움직임 그 자체를 강조하고 한글은 주체보다는 대상을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보편론을 끄집어낼 수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주체를 중시하고, 한문을 사용하는 사람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양상을 중시하고,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은 주체가 없이 대상 그 자체를 중시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류의 언어란 주체를 중시하느냐, 관계를 중시하느냐, 대상을 중시하느냐의 세 갈래로 나누어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우선하는 언어보다는 적어도 주체 혹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언어가 세계를 재패한다는 점이다. 주체를 중시하면 대상에서 주체 쪽으로 힘을 모으는 반면 대상을 중시하면 대상 쪽으로 힘을 주는 것이 된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양상을 중시하면 힘의 균형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문은 조사체계 언어이면서 어순에 있어서 명사보다는 동사를 강조하는(동사+목적어 명사) 언어체계이다. 심지어 동사의 명사화를 통해 동사를 주어로 사용하는 데서 가장 특징을 보인다. 한문은 같은 조사체계 언어이면서 주어를 생략하는 경향에서는 한글과 같지만 어순에서는 한글(목적어 명사+동사)과 다른 것이고 영어와의 관계에서는 어순에 있어서는 같지만 영어가 반드시 주어를 사용하는(주어 명사+동사+목적어 명사) 점에서 영어와 다르다.

한문은 한글과 영어와의 중간에 있다. 한문에서는 어딘가 한글식의 조사와 어순체계의 잔존성이 강하게 느껴지며 명사를 강조하는 어떤 언어체계에서 동사를 강조하는 언어체계로의 전환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문은 어순에 있어서 영어와 한글의 절충이다. 즉 문장의 앞부분은 영어어순이다가 문장의 뒷부분에는 한글어순이다. 한문은 그래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매우 심하게 흔들리는(운동하는) 문장이다.

영어는 ‘과학의 언어’ ‘추상의 언어’이고, 한자는 ‘시의 언어’ ‘이미지의 언어’이고, 한글은 ‘자연의 언어’ ‘존재의 언어’이다. 여기에 언어와 생활의 역설이 있다. 주체를 중시한 영어는 대상을 더욱 잘 파악하는 ‘객관적인 언어’가 되고, 대상의 상형을 중시한 한자는 주체와 객체의 사이에서 왕래하는 ‘시적 언어’가 되고, 존재 자체의 소리를 중시한 한글은 자연과의 일체적 삶을 영위하는 ‘존재의 언어’가 되었다.

한글의 과학성은 굳이 이 자리에서 거론하지 않더라도 알려져 있다. 한글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별도로 홀소리(모음)의 자모(字母)를 가진 글자이다. 알파벳이나 일본의 가나는 홀소리가 없다. 다른 표음문자는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의 확실한 구분이 없이 대체로 닿소리의 일부를 가지고 홀소리로 대신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은 닿소리와 홀소리를 구분함으로써 홀소리를 확실히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왜 홀소리를 만들었을까. 왜 또 그것을 독립적인 의미의 홀소리라고 했을까.

한글은 유라시아 대륙의 자음자모(子音字母) 로드(Road)의 마지막 진화였으며, 여기서부터 모음자모에 대한 형태화가 이루어진다. 소리를 잡은 데 귀신같은 귀를 가진 한국인은 자음과 자음 사이의 빈 공간을 빠져나가는(관통하는) 바람 같은 모음을 형태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자음은 일종의 모음의 발음을 위한 음향 장치의 구실을 하였던 셈이다. 모음은 본래 자모(字母)로서 독립성을 가지지 않았다. 한글은 그러한 모음의 공허(空虛)를 모음자모(母音字母)로 채웠던 것이다. 이것은 언어에 있어서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한글은 모음자모를 잡아낸, 세계 문자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초유의 문자이다. 더구나 한글은 음양의 역동성을 반영하여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문자시스템을 확립하였다. 한글을 만든 사람들은 15세기에 이미 서양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찾아낸 음소(音素)를 발견하고 끝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사물의 모양이 아니라 발성기관의 모양을 딴) 음운학을 완성하였던 셈이다. 이것은 문화의 보편성이 아니라 인간이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발성기관을 토대로 한, 일반성을 기초로 한 보편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언어학에서 형태소의 레벨은 의미층이다. 그러나 음소의 레벨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의식학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마치 유기체에서 무기체가 되는 것과 같고, 유신론에서 무신론이 되는 것과 같은 큰 위기이다. 그러나 실은 음소의 레벨은 무의식과 본능의 레벨이다. 무의식과 본능의 레벨은 의식적인 의미는 아니어도 존재론적 의미를 숨기고 있다. 이는 의식의 레벨에서 사물을 만날 때에 드러나는 의미이다. 그래서 존재는 존재의 가능성이고, 존재의 의미가 된다.

그런 점에서 포노로지는 음소의 레벨에서 소리의 의미를 찾는 존재론의 새로운 방법이다. 소리는 존재이다. 소리는 사물 그 자체이다. ‘말해진 언어’가 ‘쓰여 진 언어’가 될 때 음의 리얼리티, 현존(présence)은 사리지고 부재(absence)가 된다. 말하는 속도, 강약, 높낮이, 인토네이션 등도 사라진다. 쓰여 진 언어에서 살아남는 것은 추상화된 음소와 음절구조, 그리고 음의 공백일 것이다. 그렇다면 쓰여 진 언어는 말해진 언어에서 음의 차원을 없애면 되는 것인가. 말해진 언어의 시간의 선후관계성 대신에 위상적인 공간이 생긴다.

쓰여 진 언어는 말해진 언어가 갖는 음악적 대위법이나 선율을 잃어버리는 대신에 텍스트를 얻는다. 이것은 새로운 시공간이다. 하나를 잃는 대신에 다른 하나를 얻는 셈이다. 이것이 철학을 만들었고, 과학을 만들었다. 이것은 존재자들이다. 그렇다면 말해진 언어, 즉 소리는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음자모는 후에 닿소리가 되고, 모음자모는 홀소리가 되었다. 닿소리(a consonant)는 “발음할 때에, 날숨이 혀, 이, 입, 입술 따위에 의하여 일정한 장애를 받아서 나는 소리, 성대가 울리는가 안 울리는가에 따라 유성음과 무성음으로 나뉜다.” 홀소리(a vowel)는 "성대의 진동을 받은 소리가 목구멍이나 입, 코와 같은 조음 기관을 지날 때, 그 통로가 좁아지거나 막히는 따위의 장애를 받지 않고 나는 소리"이다.

한글은 또 닿소리를 초성과 종성에 동시에 씀으로써 보다 많은 음소의 조합으로 어휘와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한편 자연의 소리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인 이득을 얻었다. 닿소리를 종성에 사용하는 데에 따른 이용가치(도구가치)는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종성을 초성으로 사용하는 것은 얼른 생각하면 쉬운 일인 것 같지만 공기의 떨림에서 음을 잘 듣고 음을 잘라내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이다. 음을 미분(微分)하는 청력을 가지지 않고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성취였다.

한글의 자모는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모음(10자모)을 정립한 문자체계이다. 모음은 자음과 자음 사이에서 마치 존재자의 중심(근거)과 같은 존재의 역할을 한다. 모음은 또 바람 혹은 공기로 목청을 떨게 하여 유성음이 되게 한다, 유성음은 조음(調音)할 때, 목청을 떨어 울리며 내는 소리인데 모든 모음과 비음(鼻音) ‘ㄴ’, ‘ㅁ’, ‘ㅇ’과 유음(流音) ‘ㄹ’이 이에 해당된다. 무성음은 목청을 떨지 않고 내는 소리이다. 자음의 ㄱ, ㄷ, ㅂ, ㅅ, ㅈ, ㅊ, ㅋ, ㅌ, ㅍ, ㅎ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자음은 대부분 무성음이다. 모든 모음은 유성음이다. 유성음은 소리의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유성음은 그것 자체가 마치 노래(口音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와 같으며, 음악이 된다. 모음은 마치 어머니(어머니의 자궁)처럼 단어로 하여금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게 한다. 만약 모음이 없다면 소리는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음은 철자의 구성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비권력적이다.

한글의 자모에서 점(點)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우주론을 가지고 있다. 점은 선(線)의 시작이다. 그러나 동시에 점은 0차원이 될 수도 있다. 한글에서 하늘(天)은 점(點=ㆍ)으로 표현하고 땅은 수평(ㅡ), 인간은 수직(ㅣ)으로 표현한다. 하늘은 흔히 원(圓, ○)과 공(空)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결국 원(○)과 점(ㆍ)은 같은 것을 표현하는 셈이다. 점과 선의 쌓임이 해체되는 것과 함께 형태소는 제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모음에서 아래 아(ㆍ)는 현재 사용되지 않고 숨어버렸다. 아래 아(ㆍ)자가 숨어버린 것은 아(ㆍ)자가 존재의 유무(有無)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글은 원(○)과 점(ㆍ)의 우주론을 문자에서 실현한 문자체계이다. 이것은 문자에서 적분으로서의 원(圓)과 미분으로서의 점(點)을 동시에 문자체계에 실현시킨 동아시아 철학의 대장정이기도 했다. 원방각(圓方角: ◯▢△), 천지인(天地人: ㆍㅡㅣ)의 전통철학이 문자 속에 새겨진 것이었다. 한글의 자모(字母)에서 모음(母音)과 자음(子音)은 있는데 왜 아버지의 음인 부음(父音)은 없는가. 자모(字母)만큼 우주를 상징하는 것은 없다. 자모는 모자(母子)를 기초로 한다.

우주의 근본은 모자(母子)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아버지(父)라는 존재는 나중에 부가된(돌연변이로) 존재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자아나 정체성을 찾는 가장 큰 분수령이었다. 한자한문 사대문화주의 혹은 원리주의 대(對) 정음(正音) 민주혁명파의 일대 접전이었다. 최만리를 필두로 하는 사대문화주의는 집요하였고,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민주주의로 대응하였다. 비로소 말하는 대로 글을 쓰게 되어 민주주의가 첫걸음을 내디뎠다. 말의 계급화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 우리민족은 아주 옛날부터 ‘율려(律呂)의 나라’라는 전설이 전해졌다. 율려는 ‘소리의 음양’을 나타내는 것이다. ‘율려’의 발은 소리의 ‘울림’을 뜻하는 ‘울려’(울리다)와 음운에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울리는 것이 결국 율려인 셈이다. 한글의 소리는 위대하다. 한글의 소리를 뜻으로 표현한 것 같은 한자의 단어는 부지기수이다. 한글의 창제로 인해서 인간이 의미를 발생시키는(만들어가는) 현상학적 혹은 심리적 혹은 상징적 과정을 파악하는 데에 진일보하였다.

한글 발음이 같은 한자는 같은 뜻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종종 같은 발음의 단어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기도 한다. 이는 같은 발음으로 서로 정반대의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편의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서 정반대의 뜻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언어의 상징성이다. 더 정확하게는 상징적 역전(逆轉)이다.

언어는 바로 의사표현 도구로서 편리하지만 상징성 때문에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언어의 의미는 고정된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상황적이다. 언어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과 의미되는 것(시니피에)으로 구성되지만, 말은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되는 것’이다. 대화하는 당사자가 통하여 의미가 전달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이다.

닿소리는 발성과정에서 어디에 닿는(닫힌) 소리다. 홀소리는 어디에 닿지 않고 나아가는 열린 소리이다. 소리를 열고 닫는 개폐(開閉)로 파악한 것은 참으로 위대한 업적이다. 필자가 ‘역동적 장(場)의 개폐이론’(DSCO)으로 인문학적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나 소리의 철학인 ‘포노로지’(Phonology)를 만든 것은 모두 한글문화권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덕분이다. 포노로지는 한글을 만들어가는 에크리튀르 혁명의 역혁명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발성기관의 소리를 분석하여 그것을 다시 문자체계로 만들어냈다면 포노로지는 문자체계에 의해 잘라진(끊어진) 우주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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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18 [13:46]  최종편집: ⓒ 환타임스
 
한글창제 신숙주 자손 신충식 cshin999 17/03/05 [22:07] 수정 삭제
  한글은 독창적이고 훌륭한 음성문자다 인류가만든 가장위대한 지적 산물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제프리 샘슨 영국 언어학자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알파벳을 발명했다 프릿츠포스 네델란드언어학자 세계언어 학계는 한글창제를 마땅히 경축 해야한다 제임스매콜리 미국 언어학자. 세계가인정한 인류최고의 지적 유산 한글 훈민정음 해레본 1443년 12월 말소리를 완벽하게 적을수 있는 세계최초의 글자가 한글이다 거기에 최고의 공헌을한 신숙주는 세종대왕 때 집편전 학자들을 과함께 피나는 노력을 했다 당시에 교통편이 없는 중국에 13차례방문하여 학자를 만나 한글창제에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신숙주는 중국변방 언어 일본어 중국어 인도의 산크리트어 등 7개의 언어를 구사했으며 특히 일본의 특수성을 잘기록한 책을 발간 일본과의 외교를 통해 한국에 침략을 방지 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자음의기본 ㄱ ㄴ ㅁ ㅅ ㅇ ㅣ ㄷ ㅂ ㅈ ㅇ ㅋ ㅌ ㅍ ㅊ ㅎ 모음 홀소리 목구멍에서 숨이나올때 어디에도 닿지 않고 홀로나는 소리 . 하늘 ㅗㅜㅛㅠ ㅣ 사람 ㅏ ㅓ ㅕ 땅 ㅡ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을 본떠 만든글자 훈민정음 28자기본 모음 세자 자음 다섯자기본
한글에 관한 모든 것 라무 17/03/08 [11:13] 수정 삭제
  한글에 관한 모든 것 1. 훈민정음 28자는 한자의 발음기호이다. 훈민정음은 우리말(한국어, 동국어, 리어)을 표기하는 데에 사용된 적이 한 번도 없다. 2. 훈민정음 28자는 동국의 언문 27자에 '여린히?'을 추가하여 만들었다. 지금의 한글은 훈민정음이 아니라 언문이다. 3. 훈민정음은 중국인을 위해 만들었다. 문자(한자) 즉 중국어를 통일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4. 훈민정음은 본국인 동국에서 지나인 중국에 내려 보낸 것이다. 5. 중국어(한자, 문자)는 인공어로서 동방(동아시아)의 공용어이다. 6. 동국의 자연어는 리어(俚語)라 하고 중국의 자연어는 방언(方言)이라 한다.(방언리어) 7. 해례본이나 언해본에 실린 우리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중국말(방언)이다. 8. 동국과 중국은 일가(一家)이다. 동국이 본국이고 중국은 번국이다. 백년 이전에는 동국과 중국이 같은 자연어를 사용했고 같은 공용어를 사용했다. 동방(東方)은 동아시아이고 동국(東國)은 한반도이다. 9. 동국과 중국의 음성언어 통일을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10. 세종은 동국의 언문을 이용하여 세 가지 정책을 펼친다. 언문으로,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는 것, 이두를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 한문서적을 언해하는 것 등이다. 11. 세종의 언문 정책 세 가지는 모두 실패했다. 단종, 연산군, 중종 등에 의해 백지화 되었다. 12. 세종의 영향; 훈민정음(반절)을 사용하는 중국인을 동국인이 목격하고, 한자의 발음표기에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정도(훈몽자회). 13. 훈민정음과 지금의 한글은 아무 관계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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