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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여길 돌아올 것이었다
현정수의 수행소설 '파라가테'<22>
전신의 모든 곳은 철저하게 열려져서 몸으로 소릴 지각하고 눈을 감고도...
 
현정수
9.

그가 이틀을 보내고 상경한 후 나는 다시 홀로 있게 되었다. 집안을 말끔히 청소를 하고 이층 창가로 가서 밖을 향해 서있었다. 소년이 작은 새와 비밀스런 말을 나누던 그 철쭉나무가 보였다. 그러나 어둑한 새벽과 신묘한 조화를 이루던 기이한 소년 성허는 지금 그 자리엔 없었다. 그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으며 여길 다시 돌아오게는 될는지...

기자는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목요일 밤이면 그는 다시 여기에 올 것이다. 그 때는 소년에 관해 몇 가지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으려는지 나는 오늘 밤을 비롯하여 세 밤만 자면 목요일이 닥친다고 어린애처럼 꼽아보는 것이었다.

침실은 동쪽으로 창이 나있었고 침실에 짧은 계단을 내어 만든 누각은 서쪽으로 창이 나있었다. 그 누각은 허리를 세울 수도 없이 천정이 낮을 뿐만 아니라 뾰족하게 건축되어진 건물의 지붕구조 때문에 경사가 져있어서 앉은뱅이걸음을 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바닥에 다다미를 깔아서 그 위에 카펫을 얹어놓았으므로 무릎으로 기어 다녀도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때때로 거기에 엎드려 장엄한 일몰을 지켜보면서 대자연의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는데, 종국엔 그 말할 수 없는 영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감격에 찬 영탄을 토해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어버렸고 이른 새벽에 엎드린 채로 깨어났다. 창밖은 자욱한 안개 속에 숲의 음영만이 얼른거려서 풍경은 그야말로 영묘하기 짝이 없었다. 난 그길로 일어나 침실로 내려가서 반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곳은 해가 떠오르는 거룩한 동쪽, 나의 신비한 소년 성허가 밟고 있던 영험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비록 이 마음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보이지 않는 소년과 교통하려는 열망에 싸여있었다.

의식을 백회 위쪽 허공으로 손가락 한 뼘쯤 되는 곳에 고정을 시켰다. 생명이 들어오고 나가는 자리 그리고 살면서 온 힘을 다하여 지켜야할 자리였다. 그곳이야말로 우리 의식의 이원화된 절망을 치유해주는 곳,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평화의 안식을 주는 영험한 터전인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나는 찬란하게 굽이치는 백색 광휘 속으로 잔잔히 잠겨 들어갔다. 그리고 오로지 분열 없는 한 포기 자연으로 의문과 열망의 마지막 한 마디까지도 떨어져나가 평화롭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건 한 마디로 존재 그 자체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꼬리뼈 바로 아래쪽으로부터 거대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직은 깨어나지 않은 비밀의 실체,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촉발되는 힘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막강하게 잠재되어 출구를 찾고 있던 대단히 큰 힘이었는데, 분명 무언가가 매번 그 진로를 와해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주변으로 여진을 일으켜서 항문과 생식기 쪽으로 강하게 성적감각을 일으키다가 종국엔 회음부에서 하복부 및 척추를 타고 넓게 그러나 강하게 확산되면서 명치 및 경추를 통해서 머리 쪽으로 이완되고 확산되어 사라지곤 했었다. 그러한 그 막강한 에너지가 출구를 찾으며 너무나도 뻐근하게 트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가냘픈 새 울음소리가 온 몸을 섬광처럼 건드려서 전신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을 받은 순간, 시야에서 백색 광휘는 사라지고 짙푸른 코발트 색 하늘만이 개벽하듯이 쫙 펼쳐지며 동시에 짤랑! 하고 내부에서 생성된 예리하고 영롱한 소리 속에 명상은 중단되었다. 이것이었구나! 새벽녘 종달새 소리에 도를 깨달았다는 일본선사의 얘기가 이것이었구나!

그 먼데서부터 공기에 전파되어 날아오는 조그맣고 가냘픈 새의 울음소리에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게도 되니, 우리의 감각기관이라는 것은 반드시 코로써만 냄새를 맡고 귀로써만 소리를 듣는, 전형적이고 기능적인 기관 자체로만 한정되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다. 전신의 모든 곳은 철저하게 열려져서 몸으로 소릴 지각하고 눈을 감고도 먼 데를 볼 수 있는 신묘한 조화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때는 아직은 아니었다. 나의 길은 멀고도 지루했던 것이다. 나는 손바닥을 수십 번 비벼서 감은 눈 위에 얹고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비벼서 안면 근육을 풀어준 후 전신을 스트레칭 해주고는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새벽의 예정으론 명상이 끝난 후에 등산을 할 요량이었지만 누군가 다시 산간으로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는 소년의 집으로 향했다. 그것은 붉은 인동덩굴 옆으로 하얀 이팝나무 꽃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자지러질 것만 같았다. 가냘픈 꽃술들이 모여서 그토록 화려한 연출을 하는 데에 놀랍고 황홀한 나는 그 찬란한 흰 꽃무더기 밑으로 들어가 서보았다. 어떤 낯선 동굴로 들어온 듯했다. 필시 어디선가 깊은 울림으로 메아리마저 다가올 듯도 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동굴에서 거하며 신과 은밀한 교통을 나누었을 여사제들의 진혼가 같은... 그렇게 정원을 돌아보고 있다가 문득 무엇이 내 발길을 여기로 이끌었나를 다시 짐작 해보려할 즈음 웬 아낙이 그쪽으로 제법 턱에 숨이 차서 다가왔다. 나이는 한 오십은 훌쩍 넘어 육십은 다 돼보였다.

「아이구, 글 쓰시는 선생님이셔? 맞구만. 그때 그 왜 교수님 장례식장에서 보기는 했지만서두, 휴... 웬... 고개가 꽤나 가파르기도 허네.」

아낙은 가방을 뒤적여 손수건으로 둘둘 싸맨 것을 풀더니 열쇠꾸러미를 내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연하고 그러나 기대되는 흥분 속에서 아낙에게 인사를 하고선 그 열쇠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지요? 모두 무고하신 거죠? 고모님도 평안하시구요... 또...」

아낙은 고모님의 시가 쪽으로 먼 친척이 되는 사람으로서 그 댁에 머물며 가사를 돌보아주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지난 장례식 때 주방 일을 맡아보고 있었던 생각을 해냈다. 적잖이 마음이 출렁거렸다. 소년과 한 집에 거하던 사람에게 소년의 근황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감이 그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오히려 은밀한 눈길을 보내며 왜 소년은 그 열쇠를 내게 전달해주라고 한 것일까를 묻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내가 물을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궁금한 것은 소년의 건강이나 안위 따위의 일이었다.

「갑작스레 부친상을 당하고 상심이 깊을 텐데 괜찮을는지 걱정이 됐었어요. 고모님께서 갑작스레 동생을 여의신 것도 마찬가지고... 그래 모두 정말 괜찮으신 거죠?」

「그럼. 원래 산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이잖우. 사모님이야 항시 이것저것 관리를 많이 받는 사람이니 걱정헐 필요두 없구 조카님이 문제지, 조카님이...」

「왜요? 무슨 별일이라도... 건강은 한 건가요?」

「글쎄 그게... 원 ... 나로선 당췌...」

나는 아낙의 눈동자를 근심스레 들여다보았다.

「아니 워낙 집이 크기두 허지만 대체 무얼 자시고 사는 건지... 조카님 말이유. 통 식탁에서 마주허는 것두 안뵈구, 테레비를 보기를 허나 이층에서 아예 밑에를 내려오지를 않으니...」

「고모님이 그때 말씀하시기론 학원을 보낸다고...」

「학원은 안 다닌다우.」

「이러실 게 아니라 제 집으로 가셔서 좀 쉬시면서 말씀 나누시지요. 식사는 하셨는지....」

「아유... 웬걸, 나는 바깥 밥은 사먹지두 못허는 사람이구 아침 일찍이 집에서 밥은 먹구 떠나왔지만 글쎄 좀 허기가 지기는 허네. 어디 사시우? 바로 앞에 산다구 말은 들었지만.」

나는 그녀를 이끌어 함께 집으로 왔다. 얼른 찌개를 덥혀 나물 몇 가지와 밥을 내고 마주 앉았다. 그녀는 물 한잔을 쉬지 않고 벌컥거리고 마시고선 입가를 손으로 쓱 훔쳐내더니 젓가락으로 나물 몇 가지를 이것저것 먼저 맛을 다셔보는 것이었다.

「아아 물맛 좋다. 선생님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먼 나물이 그냥 모두 맛이 일품이네. 꼭 절간음식 같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를 따라서 절간음식을 꽤 먹어본 터라우. 이렇게 먹구 살아야 되여. 서울선 그냥 선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진기한 게 무척 많기는 해두 담백허질 못 허거든, 우리 한국 사람들이야 어디 뭐 그런 음식들허군 맞을 거 겉지두 않네만 그 댁 분들은 또 그렇게 길이 들어버려서... 아니 근데 조카님은 말여 그... 좀 기묘한 데가 있어. 첨에는 고모님이 고집을 피워 어떻게든 해보려구 헌 건데 조카님이 나이는 몇 안 자셨어두 아주 위엄이 있거든. 그러니 고모님두 함부루 어떻게 못허잖우. 이젠 달리 방법이 없구 젊은 사람 하나 못 쓰게 만들까봐 외려 뇌심초사니 다시 산골로 보낼까보다고 끓탕이지 뭐유.」

「왜요? 그 조카가 어디 나쁘게라도 됐나요?」

나는 속으로 조바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니 뭐 어디가 딱히 나쁘다기 보담은 그게 뭐냐구 글쎄. 산골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살던 사람을 집에다 가둬둔 폭이니 말여, 안 그렇겄수? 나는 조카님 방은 여직 청소두 못해본 게여. 이층은 서재허구 목욕탕허구 방이 두개는 있구 거실은 아주 넓은데 그게 조카님이 전부 쓰는 공간이라구 해두 내가 청소허러 올러가 보믄 문은 딱 닫혀있구 뭘 허는지 밖엔 나오지를 않어. 고모님은 운동기구 일체를 이층에다 새루 장만해 들여놓구 조카님헌테 여간 신경을 많이 쓰는 게 아니지만 그래두 감옥이지 그게. 근데 하루는 말이유 내가 하두 걱정이 돼서 문을 두드려봤는데 기척이 없는 거라. 그래서 살짜기 문을 밀어봤지.」

나는 눈을 빛내고 경청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니 근데 말여, 아주 정갈헌 거였어. 내가 청소두 안해줬잖어. 근데두 그냥 깨끗해가지구 방이 말여, 꼭 양반집 사랑채마냥, 방이 워낙 넓거든, 보료만 한쪽으루 깔려있구 바닥엔 그 양반집 책상 말여 짝달막한 거, 그리구 벽에는 교수님 글씨, 그게 또 멋들어지잖우, 그 액자 한점만 붙어있는 게, 근데 조카님이 창밖을 내다보구 있다가 나를 돌아보는데, 아이구 나는 그냥 어려워서 잔뜩 주눅이 들어가지구 뭐라 말두 못허구 문고리만 잡구 있었지.」

나는 입에 침이 마르게 긴장해서 그녀의 입술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유, 된장찌개도 아주 맛나네. 이건 직접 담근 거유?」

「아니요. 올케가 담가준 거예요.」

「올케가 담갔다면 그게 뭐 시어머니 솜씨일 거 아녀. 그려... 알만 혀.」

「그래서요? 그때 조카는 뭐라고 말을 하던가요?」

「응? 어어, 그때? 그게 근데 정말 이상허던 거여. 아니, 뒤를 돌아보구 웃음 띤 얼굴루 내게 와선 말여. 내 손을 잡구선 다정허게 말을 허는데 자기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게여. 청소두 혼자서 잘 허구 있으니 다른 데나 신경 쓰면 된다는 거여. 아유 나는 정말 이상허게 당황을 해가지구선 그게 참 이상헌 거지. 나는 도시 알 수가 없었어. 근데 말여 내가 지병이 있거든. 아이구... 기냥, 애를 낳고 나서부턴지 언제부턴지 두 무릎이 관절이 안 좋아서 그게 한번 도지면 기냥 나흘 댓새 심허겐 한 열흘을 꼼짝 못허구 들어누워서 끙끙 앓어야 되는 지경이었거든. 약으루두 안 되여 그게 말여. 그리구 평시에두 쩔룩거리면서 고생을 허는 편이었는데, 아 글쎄 그게 그 담부턴 씻은 듯이 나버린 거여. 도무지 나는 그게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두 그게 조카님허구 상관있지 싶은 게...」

그녀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디서 들어보믄 그 왜 은총을 받어가지구선 병두 고치구 헌다는 그런 얘기 말여. 집이두 들어봤지?」

그녀는 확인을 하는 듯한 눈치로 깊은 시선을 내게 던지고 있었지만 나는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지금은 뛰어댕겨두 괜찮잖어!」

나는 소년에 의해서 나쁜 에너지들이 정화된 일이 그녀에게 일어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보다 더한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무슨 일로 내려오신 거예요? 그 열쇠를 제게 갖다 주라고 하시던가요, 고모님이요?」

「아니, 그게 누가 그랬다구 헐 수가 없어. 대화 중에 그냥 뜻이 그렇게 돼버린 거여. 첨에는 사모님이 나헌테 여길 내려가서 집안 청소를 해놓구 오라구선... 그런 대화 중에 조카님이 끼어들어 가지구선 그걸 집이헌테 주고 오면 된다는 게여. 그리구 솔직히 여길 와서 청소꺼지 허구 갈라믄 하루 밤은 묵어가야 허거든. 안 그렇겄수? 나야 그러믄 좋지 산수 좋은 데루 하루 반나절 놀이 온 셈으루 말여. 안 그려? 그리구 청소는 뭐 그리 헐 게 많다구... 걸레질이나 쓱쓱 허구 바람이나 좀 통하게 문이나 열어놓구 그러믄 되지. 안 그려? 어쨌거나 사모님은 지금 속으루 여간 궁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여길 조카님 혼자서 살게끔 헐 수두 없구 그렇다구 사모님이 같이 내려올 수두 없구, 거기다가 그렇게 조카님을 방치헐 수두 없구. 그러니 진퇴양난인데 나는 내가 따라와서 살었으믄 퍽이나 좋겠구먼두... 조카님은 혼자서 예서 있겠다는 거여. 사모님은 안 된다는 거구... 아니 뭐 사모님 말대루 누군갈 사람을 딸려 내려보낼 양이믄 새사람을 구해서 내려보낼 수두 없구 나를 보내면 또 서울에다가 새사람을 들여야 허구... 사실 말이지 내가 서울에서두 없으믄 안되거든.」

그는 다시 여길 돌아올 것이었다. 속으로 나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다. 방에만 갇혀 살다니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질 않는가. 그러나 한편으론 그가 여길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의미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에 온 신경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예사롭지 않았던, “상봉의 기쁨은 너무도 짧은 채로 다시 또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인생 아니겠느냐”는 진각스님의 말씀이 사무치게 귀에 쟁쟁하던 것이었으니... 하지만 나로서야 거기 숨겨진 의미는 측정조차도 할 수 없던 것이고, 단지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강하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한 불안감만이 사뭇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제법 속된 호기심을 가지고 넌지시 내게 눈길을 돌려 물어왔다.

「원래 교수님과는 진작부터 아는 사이였수?」

나는 짐짓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한 듯 말을 받았다.

「실은 뭐 이렇게 마주보다시피 하고 살고는 있었지만 그 분네들은 무척 조용하고 또 저 또한 사교적이질 않은 편이라 별로 사귀질 못했었어요.」

「근데 왜 열쇠를 집이헌테 주라구란댜?」

「글쎄요... 아마 가까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서울서 오르내리면서 여길 관리한다는 게 가능키나 하겠어요? 그래서 조카는 여길 내려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거래요?」

「그랴아... 근데 그게 언제가 될는진 몰러. 다만 집을 오래 비워놨으니 바람도 통케 허기두 해야겄구 얼마 있으면 장마철두 닥칠 텐데 신경이 꽤두 쓰일 일이 아니겄어?」

「딴은 그러네요.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나요?」

「난 몰러. 잘 알 수가 없는 게, 나야 뭐 밥이나 짓구 청소나 허구 빨래나 허는 편이지. 차나 과일이나 내 드리면 부를 때꺼정 만날 주방에 딸린 내 방에 따루 있는 편이거든. 정원은 손질허는 정원사가 따루 있구 말여. 내가 내실루 왔다갔다 허는 건 좀 볼썽사납거든. 안 그렇겄수? 근데 조카님은 친구두 없는지 통 바깥출입두 안 햐아. 그래두 항시 건강해 뵈는 걸 보믄 정말 이상두 허지? 생기기두 얼마나 잘 생겼어? 허지만 얼마나 딱헌 일이여? 낭중엔 장가두 가야 헐 텐데 양친이 모두 안 기시니... 그래두 복은 많은 게 고모라두 있어서, 그리구 여간 부자여 그 댁이? 아버지헌테 물려받은 것두 꽤 있을 거 아닌가베?」

그녀는 폭포처럼 말을 쏟아냈으나 더 이상 들어볼 말은 없을 듯했다.

「그래도 교수님 댁 내실을 한번 둘러보고 올라가셔야 할 것 아닌가요?」

「아니, 그럭허질 말래, 그렇게 헐 필요가 없이 그냥 열쇠만 집이헌테 주고 오라는 게여. 그리구 전화번호만 알아가지구 오라는 게여.」

「누가요? 조카가요?」

「아니, 사모님 말여. 난 또 빨리 돌아가 봐야 혀. 그래야 저녁준비두 헐 거구.」

「여긴 뭘 타고 오셨어요? 버스요?」

「아니, 기사가 태우구 왔지. 이제 좀 있으면 일루 올 거여. 지금 밥 먹으러 갔거든 어디 음식점을 찾아서 사먹구 오것지.」

나는 전화번호를 가르쳐줬고 그녀는 다시 돌아갔다. 덕구도 잘 있다는 안부를 꼭 전하라는 당부를 빼놓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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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11 [09:51]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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