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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사상과 존재론의 동서고금소통
'제 2회 천부경의 날'학술대회 발표 논문 '소리철학으로 본 천부경'<3>
박정진 철학인류학자 - '소리철학, 포노로지를 제안하며'/소리의 시대로
 
박정진
2. 천지인 사상과 존재론의 동서고금소통

1)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으로 본 천지인 사상

--샤머니즘에 대한 존재론적인 재해석--

천지인(天地人)사상은 전통 신선도(神仙道: 神仙敎, 仙道)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사상이고, 샤머니즘에서도 마찬가지로 신봉하는 사상이다. 샤머니즘과 신선도의 차이는 전자는 초자연적인(초월적인) 혼령을 인정하는(전제하는) 종교(宗敎) 및 사상이고, 후자는 그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는 도(道) 및 사상이다. 전자는 종교적인 성격이 강하고, 후자는 종교보다는 자연적인 수련단체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둘을 극명하게 구분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는 샤머니즘이 자연의 도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반대로 신선도가 종교가 아니라고 할 확실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무(巫)와 선(仙)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서로 중첩되는 부분과 경계의 겹침(이중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대립시킬 수는 없지만, 굳이 차이를 논한다면 샤머니즘은 위로부터 내리는 신을 받는 것이라면 선도는 아래로부터 신을 쌓아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내림형(강림형)이고, 후자는 올림형이다. 전자는 영육분리주의(靈肉分離主義)고, 후자는 영육합일주의(靈肉合一主義)이다. 선은 마나(mana)계열이고, 샤머니즘은 아니마(anima)계열이라고 한다.

무(巫)는 귀신, 혹은 신 중심(巫=工+人+人)이고, 선(仙)은 사람 중심(仙=人+山)이다. 공(工)은 천지인을 상징한다. 선(仙)의 사람중심은 그렇다고 서양의 인간중심주의와는 다르다. 한국에 신선사상이 일찍부터 싹튼 것은 국토의 4분의 3이 산이고, 산은 노출된 화강암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화강암은 소위 영발(靈發), 신발(神發)을 잘 받는 돌이다. 아마도 전자기력(電磁氣力)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샤머니즘이든, 신선사상이든, 우주관은 공통점이 많다. 우주는 가역(可逆)-순환(循環)하는 세계이다.

가역-순환하는 세계는 반드시 매개(촉매, 영매, 성령)가 있기 마련이고, 우주론적으로 보면 인간은 그 매개의 대표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만물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다른 것의 영매가 된다. 영매에서는 동식물에서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없다. 무(巫)는 신내림을 받으니 결국 영매에 잡히는(노예가 되는) 셈이다. 선(仙)은 이에 비해 스스로가 주인이 된다. 이를 두고 ‘우주적 지성’(cosmic intelligence) 혹은 ‘우주아’(宇宙我, 브라만=아트만)에 도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무당은 바쁘고 신선은 한가롭다. 말하자면 무당은 우주의 심부름꾼과 같은 형상이고, 신선은 우주의 주인과 같은 형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인이 되는 것과 노예가 되는 것이 차이가 없다. 각자 자신이 타고난 소임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무당은 그래서 많은 일을 한다(선무당 사람 잡은 일도 있긴 하지만). 신선은 자신의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자신이 무당계열인지, 신선계열인지 살펴볼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둘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러나 신이 오르고 내리는 것, 신의 왕래라는 것이 매우 가역적이고 이중적이고, 애매모호해서 과학의 어떤 것처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신을 묘(妙)하다, 신묘(神妙)하다고 하는 것일 게다.


샤먼계열

기독교

영육이원론

마나(mana)계열

주인<노예

정신주의

(초월주의)

신선계열

불교

영육일원론

아니마(anima)계열

주인>노예

육체주의

(자연주의)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샤머니즘이 발달하여, 서구문명과 만나서 오히려 기독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는 샤먼의 계열이고, 불교는 신선의 계열에 가깝다. 초자연적인 세계를 인정하는, 영육분리주의의 샤머니즘은 실은 빙신에 의해 가장 강력한 것이 될 소지가 많다. 예컨대 범신(凡神) 가운데 지고신(至高神)의 형태가 갑자기 유일신이나 절대신으로 변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은 주로 북방 유목기마민족 사이에 퍼진 원시·고대 종교로서 이것이 서양으로 전하여져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가 가장 샤먼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샤머니즘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가장 샤먼을 싫어한다.

샤머니즘의 빙신빙의-자기최면은 기독교의 성령강림-은총에 해당하고, 불교의 해탈무아-자각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샤머니즘의 특성이 고등종교에서 변형되었다는 뜻이다. 변형은 동일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하는 것이다. 변형은 동일성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차이를 우선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경우 성령운동이나 각자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통성(通聲)기도를 통해 교세를 넓혀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리적인 전도보다는 전통 샤먼의 굿과 같은 의례를 통해 몸에 파동을 일으키는 감동이나 감전이나 전율 등에 호소하는 편이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는 설교보다는 노래(찬송가)를 계속해서 부르거나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짐으로서 신앙심을 북돋우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소리에 대한 존재론적인 연구를 촉발하게 된다. 소리(노래)는 말(설교, 성경)보다는 존재론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인 기독교 신자 아내를 둔 한 미국인 찰스 멀슨(55)의 고백을 들어보자.

“아내가 통성기도 하는 것 보고 ‘크레이지(미쳤나)’ 생각했어요. ‘주여∼, 주여∼’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하나님께 뭘 따지나 싶더라고요. 하나님은 작게 얘기해도 다 듣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크게 외쳐야 하는지 싶었고요.”

찰스 멀슨은 점잖고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그는 주로 묵상기도를 했다. 혼자 조용히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통성기도에 거부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동화됐다.

“제가 뭐 힘 있나요. 국제결혼 가정도 똑같죠. 그런데 저도 통성으로 기도하다 보니 좋더라고요.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시는 것 같고요.”

멀슨은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한국에서 14년간 살았다. 미국 군무원으로 일한다. 아내 백지은씨와는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미국에서는 미국 교회를 다녔고, 한국에서는 VCF(Victory Christian Fellowship)에 출석한다. VCF는 국제교회로 미국, 필리핀, 아프리카 등에서 온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으로 이뤄져 있다.

멀슨은 한국교회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새벽기도를 꼽았다. “한국인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강해요. 기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특히 새벽기도요. 이를 통해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같아요.”

미국교회에는 새벽기도회가 없다. 주일예배, 수요예배만 드린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은 이때만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도 한국의 새벽기도회에 가진 못한다. 출근시간이 오전 5시 반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가족들과 기도모임을 갖는다.

“동감이에요. 한국의 새벽기도 대단해요. 매일 새벽 교회 갔다가 일터로 향하는 한국인에게 경의를 표해요.”

VCF 목사인 앤드루 히라타(52)의 말이다. 일본계 미국인인 그는 하와이 태생으로 1995년부터 한국에서 산다. 그도 미국 군무원이다. 미국은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는 목사도 많다. VCF는 2002년 시작, 동두천 등 국내 4곳과 필리핀 1곳 등 해외에 지부 교회를 갖고 있다. 이태원동 VCF에 참석하는 교인이 200여명이다. 외국인 교회로서는 큰 규모다. 서울 이태원동 이태원감리교회의 예배당을 빌려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건물 없이 일정시간 예배장소만 빌려 예배드리는 교회가 많다. 미국의 한인교회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새벽기도회에 한번 갔어요. 너무 놀랐어요. 교회에 꽉 들어찬 교인들도 그렇고, 이들의 강력한 기도도 그렇고요. 통성기도 할 때는 무슨 일 나는 줄 알았어요.(웃음)”

통성기도의 큰 소리는 묵상기도의 조용한 말보다는 자연에 가깝고, 자연의 파동과 결합하기 쉽다. 성령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묵상기도보다는 감정을 상승시키는 통성기도 때에 더욱 빨리 강림하고, 기도자로 하여금 쉽게 엑스타시에 오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 염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소리를 내서 염불을 하는 경우 쉽게 자연과의 합일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선불교의 화두(話頭)에 못지않게 한국의 경우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육자(六字)염불이나 관음(觀音)신앙, 그리고 승려들에게는 능엄경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이 인기를 끌었다.

샤먼을 가장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대상은 예술가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예술가는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샤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샤먼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샤먼은 인간의 가장 현저한 특징이다. 하늘과 땅은 구조적으로 ‘천(天)/지(地)=+/-’로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氣)의 현상의 하나인 전기(電氣)현상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표현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샤먼은 구조적이면서 동시에 전기적이다.

샤만의 공수(신내림)와 예술가의 영감은 일종의 전기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통(神通)이라는 것은 감통(感通) 혹은 감전(感電)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우주와 하나가 되고, 어떤 대상과도 하나가 되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이른다면 이는 신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신인합일은 반드시 윤리적일 필요는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지극히 윤리적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필요조건은 아니다.




(+)

영매

(靈媒)

영감

(靈感)



(0)

무당

(天/地)

예술가

(artist)



(-)

굿

(행위)

작업

(일)

샤머니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해가 요구된다. 샤먼에도 여러 등급이 있다. 예컨대 개인의 운명과 길흉을 점치고 재앙과 액을 막아주는 샤먼이 있는가 하면 국가를 다스리는 샤먼 킹(shaman-king)과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큰 무당도 있다. 큰 무당의 경우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위해 지혜를 동원하고 신탁을 받는가 하면, 집단(부족국가)의 존속을 위해 탁월한 예지를 발휘함으로써 집단의 수장(혹은 추장)이 된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샤먼은 정치적 지도자였으며, 동시에 자연과의 관계정립에 있어서 보다 적응적(adaptive)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인물이다. 샤먼에게는 오늘의 의미에서 정치가로서만이 아니라 과학자적인 의미마저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샤먼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마음을 비우고) 집단의 요구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한 점에서 샤먼은 성인(聲人, 聖人)의 원형이다. 본래 성인은 ‘소리를 잘 듣는’ 인물이다. 그래서 귀(耳)가 먼저이다. 소리를 잘 듣는다는 것은 다른 감각과 달리 온몸으로 지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귀가 비어 있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몸을 비우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천지인(天地人) 사상은 우리민족의 대칭철학이다. 천지는 대칭관계에 있으며, 인(人)은 그 속에 천지를 다시 품고 있다. 인은 역동적일 때는 천지를 대칭적으로 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천지가 대립하게 된다. 대립하게 되면 대칭은 굳어지고, 이분화 된다. 대칭적일 때는 이중성을 띠고, 가역적이 된다. 이때 인간중심주의가 되면 인간이 독립적인 하나가 되고, 이때는 대칭의 천지 가운데 천이 기표화(記表化) 되고, 이성주의가 된다. 자연중심이 되면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기의(記意)가 강조된다. 기의의 가장 일반화된 형태는 무의미(無意味)이다. 세계는 숨어 있다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지구(우주)에서 ‘의미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의미의 존재’(의미/무의미)가 된다.

인간은 자연이라는 전체성에 기표를 던짐으로써 자연으로부터 의미를 낚시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는 결국 무의미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의미는 주장하는 자의 것(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관철하는 것)이다. 의미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기호의 정치를 의미한다. ‘/’의 위와 아래, 예컨대 ‘천/지’는 처음부터 경계가 이중적이고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도가 가능하게 된다. ‘상/하’ ‘좌/우’ ‘안/밖’은 불확실하다. 세계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확실함은 주장되어야 확실한 것이 된다.

세계는 ‘있기’(有, 所有) 때문에 없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은 ‘없기’(無, 無爲) 때문에 있게 된다. 있음과 없음은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이중성이고 애매모호함이고, 결국 양자는 차이에 불과하다.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존재의 정체성을 알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것은 확실하다는 뜻이다. 천지인은 서로 다르다. 하늘은 어떤 것. 땅은 어떤 것, 인간은 어떤 것이다 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삼자가 서로 다는 것은 확실하다. 서로 다른 것은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 앞에 전개(展開)되어 있다.




상수학

기본자음

존재/존재자

空/色

차원

기본모음

↑↓



1

○(圓)





點線(1차원)

․ (天)



3

△(角)

天/地,

空/色

積(3차원)

l (人)



2

□(方)





面(2차원)

ㅡ(地)

세계는 천 중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지 중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인 중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세계는 천지중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인중심으로 해석할 경우 대칭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대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을 대칭으로 해석할 경우 천지도 대칭으로 해석하게 되고 천지인이 바로 인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해석된다. 이 때 인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수많은 대칭, 다원다층의 대칭이 가능하다. 물론 인을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대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천지인 사상에 대한 오늘날의 구조주의적 해석이나 존재론적인 해석은 필요한 일이면서도 실은 안성맞춤의 일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 서양철학은 이성에 의한 구성주의철학이 주류였다. 그러나 후기근대에 들어 구조주의와 해체주의, 그리고 존재론 철학이 등장하고부터 서양철학은 크게 변모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서양철학이 철학적 일관성을 유지하기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동양이나 제 3세계에서 철학적 영양분을 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구조주의와 존재론 철학이 실은 재래의 천지인 사상이나 음양사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은 그것 자체가 개념이라기보다는 이미 기호이고, 구조이고, 대칭이다. 이는 개념적 구성을 통한 철학이 아니라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기호화한 사상이다. 자연은 본래 대칭적으로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원시미개인들은 자연을 대칭적으로 놓는 방식을 좋아했고, 나아가서 동식물의 토템을 통해 마을이름을 짓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곤 했다. 이는 인간 정신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적 혹은 본능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서양문명은 크게 이분법의 굴레 속에 있다. 그러한 한계는 바로 동일성과 정체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서양은 근대에 이르러 존재자 위주의 인과적 사고, 도구적 사고, 이성중심주의로 일관해왔는데 비록 그러한 사고는 역사적 전개에서 세계를 지배국으로의 위상을 누리긴 했지만 부수적으로 많은 문제를 남겼다.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중성과 애매모호성으로 요약되는 원시부족의 대칭적(대립이 아닌) 사고, 존재적 사고의 도입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는 음양오행사상이나 천지인 삼재사상에서 그러한 존재적 사고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행이다. 음양사상은 처음부터 대칭적 사상이었고, 천지인 삼재사상은 대칭적 사상에서 인간이라는 변수가 들어감으로써 인간에게 역동성을 부여한 측면이 있다. 바로 인간에게 역동성을 부여하였지만 그 역동성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고정시키느냐, 그리고 그것을 존재적으로 혹은 존재자적으로 사용하느냐는 각 개인이나 국가의 몫이었다. 인간은 존재와 존재자의 사이에 있는 경계선상의 존재이다. 그러한 점에서 인간은 가역적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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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11 [10:24]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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