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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물같이 바람같이 >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조선풍수역사 - 세조의 풍수집착
김규순의 풍수보따리<30> 새로운 반전의 매개 = 풍수
무덤이 후손에게 지대한 영향 끼친다는 믿음, 경릉 조성으로 이어져
 
김규순
수양대군은 계유정란으로 정권을 잡은 후 자기가 왕이 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다.

그러나 역모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수양대군 자신이 아버지 세종의 뜻을 거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조가 왕권을 잡던 시기의 조선 신하는 죄다 세종의 충신들이었다. 수양대군을 따르지 않는 70여명이 넘는 세종의 충신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난 뒤에야 그의 왕권찬탈은 성공할 수 있었다.
 
세종 때 길러진 신진사대부 즉 조선의 대들보 수 십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왕조의 인적시스템이 파괴되었으니 조선이라는 왕국도 그 내적에너지에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이 손실은 불안과 불신, 권모술수 그리고 정통성 상실이라는 전대미문의 가치관 붕괴가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은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접수한다.

세조가 거사를 단행한 모토는 왕권의 확립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왕권 확립은 쉽지 않은 과제였고 현실적으로도 왕권확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왕의 수명이 짧았다는 것이다. 수명은 인간세상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자식을 낳아야 하는 시기와 자식을 양육해야 하는 시기 그리고 자식을 후원해주는 시기까지 살아야 집이나 국가가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세조(1417-1468) 후손의 수명을 보면,

장남 덕종은 20세,

차남 예종도 20세(재위 14개월),

장손인 성종은 36세(12세등극, 수렴청정7년),

성종의 장남인 연산군은 31세,

성종의 차남 중종은 67세,

중종의 장남 인종은 31세(재위8개월),

중종의 차남 명종(1534-1567, 12세등극, 수렴청정)은 34세로 수명을 다한다.

중종을 제외하고는 왕위에 오른 지 1-2년 사이에 죽거나, 아니면 12-19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섭정당하는 바람에 왕권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었다. 중종도 왕위에 오래 있기는 하였으나 간신배에게 휘둘려 치적은 보잘 것 없었다. 세조 사후 100년동안 이렇다 할 업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명종이후 등극한 선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왕조는 풍전등화처럼 위험했다.


세조는 사후의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 채, 장남이 죽자 장남의 무덤을 선정하는데 고심을 한다. 그리고 단종의 비는 한양에 두고서 감시를 한다. 혹시나 후손이 태어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세조가 우려한 것은 다시금 역모가 일어나서 자신의 혈육들이 모조리 죽어나가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식들이 왕이 되어 조선을 이끌고 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고로 왕권을 쟁취한 후 세조는 왕권의 세습을 위한 풍수를 진행한다.


세조가 왕권을 찬탈하고 미처 숨을 돌리기 전에 장남인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설에 의하면 현덕왕후의 저주에 따른 것으로 민간에 전승된다. 이는 정통성과 명분없는 세조의 후안무치적인 살생행위에 대해 백성들의 민의가 이반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쨌든 세조는 의경세자의 죽음에서 새로운 반전이 필요했다.

그 반전의 매개는 풍수였다. 의경세자의 시신을 통하여 의경세자 이후의 후손들에게 광영을 던져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무덤자리를 찾듯이 이 잡듯이 한양부근을 샅샅이 훑는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 보다는 자기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죽은 자식(의경세자)의 무덤자리를 찾는다. 그의 장손은 죽었지만,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시작을 여는 매개로써 풍수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마도 의경세자의 아들 즉 자기의 적손인 성종이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의경세자가 세조3년 1457년 9월2일에 죽는다.

그 직후 세조는 냉정을 되찾고는 의경세자의 무덤자리를 구하는데 진력을 다한다.

이순지에게 양주 대방동, 광주 과천, 건원릉 부근, 양주, 풍양을 살펴보게 한다.

정인지(鄭麟趾)·강맹경(姜孟卿)·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황수신(黃守身)·권남(權擥)·이순지(李純之)·정식(鄭軾)·임원준(任元濬) 및 풍수학(風水學)의 노목(魯穆)·안효례(安孝禮)·원구(元龜)·조수종(曹秀宗) 등에게 명하여 한강 남쪽 땅, 고양, 양근, 미원, 교하, 원평, 용인, 금천, 인천, 광주, 등지를 상지하게 한다.

그래도 별 소득이 없자 세조는 친히 땅을 살피러 다닌다.

과천 청계산 기슭 동쪽으로 뻗은 곳과 과천 인덕원 부근, 광주 원평, 동소문 밖 전간, 풍양, 토원 등지를 살피러 다녔다. 그러다가 원평을 정하였으나 협소하다는 이유로 공사를 중단시켰으며, 세조3년 1457년 10월14일에야 고양현 봉현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이 지금의 경릉으로 고양시(高陽市) 덕양구(德陽區) 신도동(神道洞)에 있는 서오릉(西五陵)중 하나이다.
 
▲서오릉중 하나인 경릉의 앞 부분.    © 김규순

▲ 경릉의 뒷 부분.     © 김규순

이렇게 세조가 공을 들인 것은 풍수를 믿었기 때문이며, 시신의 집인 무덤이 후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종이 왕위에 등극한 지 14개월 만에 죽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성종이 왕위에 등극한다. 세조는 자기의 후손이 끝까지 조선의 왕위를 물려 받기를 소망했다.

형이었던 문종의 후손이 왕이 될 경우 자기의 후손들은 모두 죽음으로 몰린다는 것을 모르는 세조가 아니었다. 그래서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를 한양에 두고 계속 감시했던 것이다. 혹시나 단종의 씨가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 때문이다.

단종이 자살했다고 세조왕조실록에 적혀 있으나 정황상 사사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단종 사후에 단종의 시신을 후하게 장사지내주지 않았으며 시신을 길에 내버려두기까지 했으며 시신을 거두는 자는 처형한다고 하였으나, 엄홍도라는 자에 의해 단종은 장릉에 암장되었다. 결국 단종이 죽고 난 후(1457년 10월21일)에 세조는 1457년 11월24일 의경세자의 시신을 땅에 장사지낸다. 이를 보면 주도면밀하게 단종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김규순 서울동인학회 원장  www.location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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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29 [09:27]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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