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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물같이 바람같이 >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왕이 된 남자 - 풍수로 왕권을 수호한다
김규순의 풍수보따리<28>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의 소릉 파헤친 세조
권력을 신속하게 공고히 하기 위한 공개적인 풍수적인 해코지
 
김규순
드디어 수양대군은 계유정란을 일으킨다.

김종서와 황보인을 살해하고 안평대군을 강제로 납치 감금한다.

수영대군은 살생부에 따라, 임금이 부른다는 교서를 내려 보내 친전에 들어오는 대신들을 들어오는 순서대로 단종이 보는 앞에서 쳐 죽인다.

계유정란 후에는, 이미 죽은 살생부 명단의 자식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철저하게 정적을 말살하기 시작한다.

이에 겁을 먹은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내놓으니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세조에게 반발한, 세종의 충신 집현전 학사들은 단종복위운동을 전개하다가 많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리하여 세종께서 육성한 조선의 인재를 단 시일 안에 싹쓸이하듯 수십명을 죽여 버리니 조선의 역량이 회복될 수 없음에 이른다.
 
▲ 경복궁과 북악산. 경복궁과 북악산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다. 형수와 형님을 흉지에 몰아넣고, 조카를 죽여 시신을 버리면서까지 왕권을 잡아야 했던 수양대군 세조의 당위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과연 정통성이 없는 최고 권력은 미치광이를 만드는 독배인가.     © 김규순

세조는 형인 문종과 형수인 현덕왕후를 흉지에 몰아넣고 계유정란을 일으켰으며, 왕이 된 후 저항세력이 거세지자, 1457년 6월21일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영월로 유배를 보낸 직후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의 소릉을 파헤친다. 그 사실이 정사에 기록되어 있다. 현덕왕후의 소릉이 파헤친 것은 1457년 6월26일이고, 세조의 장자가 죽은 것은 9월2일이다. 귀신이 된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저주를 퍼부은 것은 언제쯤일까.


세조 3년 정축(1457,천순 1) 6월26일 (무오)

<모반으로 권전과 노산군의 어미를 서인으로 개장할 것을 청하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어미 아지(阿只)와 그 동생 권자신(權自愼)이 모반(謀反)하다가 주살(誅殺)을 당하였는데, 그 아비 권전(權專)이 이미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으며, 또 노산군(魯山君)이 종사(宗社)에 죄를 지어 이미 군(君)으로 강봉(降封)하였으나, 그 어미는 아직도 명위(名位)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마땅하지 않으니, 청컨대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개장(改葬)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하룻밤에 세조가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가 매우 분노하여

"네가 죄 없는 내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너는 알아두어라" 하였다.

세조가 놀라 일어나니 갑자기 동궁(의경세자, 덕종)이 죽었다는 기별이 들려왔다.

그 이유로 소릉을 파헤치는 변고가 발생하였다.

왕권을 빼앗긴 임금도 화가 땅속까지 미친 예를 보지 못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정릉, 소릉 두 왕비의 능이 변을 당했다. <축수편>


-1457년(정축년) 겨울에 세조가 궁궐에서 낮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린 괴이한 일이 생기니 곧 소릉을 파헤치라고 명하였다. 사신이 석실을 부수고 관을 끌어내려 하였으나 무거워서 들어낼 도리가 없었다. 군사들이 놀라 괴이쩍어하더니 글을 지어 제를 재내고서야 관이 나왔다. 사나흘을 노천에 방치해두었다가 곧 명을 따라 평민의 예로 장사지내고서 물가에 옮겨 묻었다. <음애일기>


- 능을 파헤치기 며칠 전 밤중에 부인의 울음소리가 능 안에서 나오는데

"내 집을 부수려 하니 나는 장차 어디 가서 의탁할까"하였다.

그 소리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얼마 후 역마를 탄 사신이 갑자기 달려왔다. 언덕배기에 옮겨 묻었어도, 영이함을 매우 드러내서 예전 능이 있었던 터의 나무, 돌을 범하든지 마소를 풀어놓아 그 무덤자리를 짓밟으면 맑은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지고 비바람이 불어 닥치므로 누구나 서로 경계하고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이 일을 본말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이야기해 준 노인들이 있다. <음애일기>


세조는 현덕왕후의 소릉을 파헤쳤다.

세조가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헤친 것은 이미 단종을 죽이려는 결심이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무덤을 해코지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며, 특히 그의 아들(단종)이 살아 있는데 그 어미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은 이를 통하여 단종의 존재를 없애려는 기도로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풍수적인 해코지인 것이다.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신이 물에 떠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력을 신속하게 공고히 하기 위한 공개적인 풍수적인 해코지였다.

그러자 단종의 모친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저주를 퍼붓는다. 세조가 단종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현덕왕후가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저주를 받고 난 직 후, 세조 3년(1457) 9월 2일(계해)에 세자 도원군이 죽는다. 도원군이 의경세자이다. 또한 세조는 의경세자의 무덤이 완성되기 며칠 전에(10월21일) 단종을 사사하여 현덕왕후의 저주에 복수를 감행한다. 마치 자기 후손을 위한 제물로 바치듯이-.

단종을 죽인 후 그의 시신조차 땅에 묻지 못하게 엄명을 내린다. 그래서 그의 시신은 동강의 물가에 버려진다. 그러나 세조왕조실록에는 단종은 자살했으며 예를 다해 장사를 지내라고 명을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종의 묘는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거두었으며 중종15년(1516년)에야 정식적으로 제사가 지내졌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세조실록의 기록은 거짓이라 하겠다.


세조는 개선장군처럼 1457년 11월24일(갑신)에 의경세자를 고양현 경릉에 장사지낸다.

아들이 죽는다는 것은 자칫 대를 잇지 못함을 염려해야 한다. 그는 의경세자의 아들 즉, 손자를 염두에 두고 장사를 지냈다. 세조 자신이 40일간이나 찾아 헤맨 끝에 찾아낸 왕지에, 단종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아들을 장사지낸 것이다.

이로써 현덕왕후의 저주에 대해 세조의 일차적인 풍수적인 대응이 마무리 짓는다.

마지막 남은 숙제는 자신의 무덤(광릉)이다. [김규순 서울동인학회 원장  www.location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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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28 [09:58]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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