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민족선도민족역사민족종교민족무교민족역학민족문화 로그인 회원가입 환타임스에 바란다 후원하기
뉴스일반칼럼기획물같이 바람같이민족언론동맹靈性동아리동맹환포터통신 환토방 바로가기
편집: 단기 4351.09.26 03:42 (서기 2018)
물같이 바람같이
강현무의 우리문화 X파일
권영준의 인체삼육도 원리
권영준의 하늘말·하늘글·하늘법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김용성의 태극한글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김주호의 얼 말 글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박민찬의 도선 풍수
박상근의 웰빙 풍수
박용규의 주역원리 탐구
반재원의 우리 희망 토종약초
서상욱의 주역 산책
성미경의 하늘그림궁
소윤하의 穴針뽑기 대장정
이공훈의 道敎탐색
이용범의 한국陶瓷 탐험
이훈섭의 단군제영한시 되보기
정진중의 씨알 교육
조성제의 무교 生生之生
조옥구의 한민족과 漢字 비밀
조옥구의 한자 실전인문학
회원가입
환타임스에
바란다
후원해주세요
기사제보
HOME > 물같이 바람같이 > 이공훈의 道敎탐색
중국 도교와 우리나라 도교의 관계
<기고>이공훈 21세기신문화연구회장 '유불선삼교합일사상과 도교<10>
 
이공훈
2. 중국의 도교와 우리나라의 도교와의 관계

(1) 흔히 도교는 중국의 민간종교라고 한다. 따라서 중국에는 도교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도교가 없다고 한다. 이는 글자 그대로 도교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관점에서 보는 견해로 이와 같은 논법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찌기 태평도니 천사도니 오두미도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역사상 등장하는 수많은 민간종교들이 거의 전부가 도교의 일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에는 불교를 위시해서 회회교, 마니교, 라마교, 기독교 등도 들어왔고 기타 수많은 이름 모를 종교들도 들어왔다. 세계국가로서의 중국에 모든 문물이 모여들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외래한 종교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토착화 과정을 밟았을 것이고 그 토착화 과정에는 중국 민중들 속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도교적 성향과의 마찰과 융섭이 일어났을 것이다. 중화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적 자부심으로 가득찬 그들이 어떠한 외래종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을 송두리째 팽개쳐버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오히려 외래의 것을 자기네들의 것으로 순화시켜버리는 데에서 문화적 우월감마져 느끼며 살아온 그들이다. 그 문화적 우월감의 바탕에는 태고 이래로 흘러내려온 전통적인 사상들 즉 신선사상이나 노장철학이나 무속신앙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를 종교적으로 체계화하고 여기에 유교사상과 불교사상 나아가 외래종교사상까지 포용하는 종합사상체계로서 도교가 성립되어 민중편에 서서 연면히 흘러내려왔다. 그러므로 도교가 중국의 민간종교라고 하기 보다는 중국의 민간종교를 도교라고 하는 편이 오히려 타당할지도 모른다.

(2) 동아시아의 한편에 우거해온 우리나라에 있어서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중국과 아무런 차이가 있을수 없다. 원래 종교는 국경을 인정하지 않은 경향도 있지만 그런 점을 무시하더라도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종교적 단절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도 고래로 신선사상이 있어왔고 자연주의철학이 흘러내려 왔으며 무속신앙도 흘러넘쳤다. 오늘날 사학계의 일부에서 신선사상이 동이족에서 시작되어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고 동이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니 중국문화의 기원은 우리민족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의 사실 여부는 사학계에서 규명할 필요는 있으나 이 자리에서 따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고전에 보면 산동반도 이동지방을 해동이라고 하여 신선이 사는 나라로 오래동안 치부해온 걸 볼 때 신선사상의 발상지에 대해서는 연구해 볼만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바탕이 중국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도 도교적 성향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와 중국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에서는 성립도교가 존재하여왔고 우리에게는 성립도교가 존재하지 않은 채로 민간신앙 형태로 흘러 내려왔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물론 더 연구해 보아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도교가 우리 의식 속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우리나라에는 상고시대 이래로 자생적으로 나타난 神敎 내지 仙敎 信仰이 존재하여왔는데 삼국말 중국에서 수입된 도교와 유사한 점이 많아 유달리 외래한 중국도교와 크게 이질적인 요소가 없었다. 따라서 외래종교로서의 실감을 느끼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동질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유교와 불교가 외래적인 종교로서 크게 부각되어 민족사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반면 도교는 이들에게 습합되거나 민간신앙인 무속과 밀착된 형태로 존재하여 왔다.

우리나라에는 과연 성립도교 즉 도교교단이 존재하지 아니했을까.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있는 풍류도가 먼저 떠오른다. 고운 최치원은 그 글에서 풍류도에는 유불선 삼교가 포함되어있다고 밝히고 있다.

國有玄妙之道 曰 風流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卽孝於家 出卽忠於國 魯司冠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이 풍류도는 풍월도 또는 화랑도라고도 하며 그들을 국선도라고 불렀고 이는 유와 불과 선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건 곧 그를 포함하여 합일했음을 뜻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랴. 더욱이 여러 명칭으로 불려지고 그 교도들을 국선도라고 불렀다면 이는 성립도교의 존재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도교사`의 저술가 傅勤家는 말하기를 , 화랑도가 중국 도교의 성격과 흡사한 점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는 최치원의 <鸞郞碑序>에 국유현묘지도의 내용이 유·불·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운운한 점을 감안하여 화랑도도 도교와 매우 유관하다고 하였다. 그는 화랑도가 도교와 유사하다고 하였으나 이 유사하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도교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충분한 학문적 토대가 부족하므로 완곡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미흡한 표현이고 부정확한 표현이고 어쩌면 부당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는 화랑도가 곧 도교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우리는 `유사`하다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소위 중국의 민족종교인 도교가 화랑도와 유사한 것인지 화랑도가 중국의 그것에 유사한 것인지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도교의 바탕이 신선사상과 자연주의철학(노장철학)과 무속신앙과 유교와 불교라고 할 때 우리나라와 중국을 분별해 본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성립도교 즉 도교교단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생겼느가 하는 점은 그것이 `유불선삼교합일사상`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합일(=종합, 포함, 융섭, 교합, 통합 등도 같은 의미임)의 작업은 특출한 종교적 귀재의 출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종교적 귀재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요는 도교적 사상의 연원은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분별의 실익이 없으나 조직된 교단의 출현은 어떤 사회적 기능을 하는 바가 있으므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중국의 도교는 교단이 형성되어 연면히 흘러나왔고 또 그 아류들도 수없이 많이 분파되어 성립도교로서 산재하여 왔으나 우리나라는 신라의 멸망 이후 조선조 말엽까지 성립도교로서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민간신앙의 개인차원으로써만 흘러내려 왔다. 왜 우리는 신라멸망 이후로 성립도교가 존재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첫째, 고려의 불교나 조선의 유교가 배타적이어서 타종교 예컨대 고려시대에 유교나 도교를 , 조선시대에 불교나 도교를 종교교단으로서 인정해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고려의 불교나 조선의 유교가 모두 집권자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로서 기능하면서 피지배계층을 강력하게 통제하여 왔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둘째, 과거 중국의 태평도나 천사도처럼 또 그 후의 홍건적이나 태평군처럼 민중의 힘으로 왕권을 무너뜨릴려는 민중반란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점은 도교교단이 없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민중반란이 없었다는 말도 성립되므로 충분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쨋건 간에 우리나라에서 신라가 멸망한 이후로 동학이 창도되던 1860년 이전까지의 근 900년간에 걸쳐서 도교 교단이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사가들의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고 필자의 천박한 학문으로 단정내릴 수는 없지만 외침에 피폐할 대로 피폐했던 고려조나 세계사적으로 흔치 않은 500여년 간의 조선왕조체제를 두고 볼 때 도교교단의 성립은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이공훈 21세기신문화연구회장]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3/03/21 [09:29]  최종편집: ⓒ 환타임스
 
물같이 바람같이
강현무의 우리문화 X파일
권영준의 인체삼육도 원리
권영준의 하늘말·하늘글·하늘법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김용성의 태극한글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김주호의 얼 말 글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박민찬의 도선 풍수
박상근의 웰빙 풍수
박용규의 주역원리 탐구
반재원의 우리 희망 토종약초
서상욱의 주역 산책
성미경의 하늘그림궁
소윤하의 穴針뽑기 대장정
이공훈의 道敎탐색
이용범의 한국陶瓷 탐험
이훈섭의 단군제영한시 되보기
정진중의 씨알 교육
조성제의 무교 生生之生
조옥구의 한민족과 漢字 비밀
조옥구의 한자 실전인문학
최근 기사 클릭 베스트5
  환타임스 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제휴문의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오시는 길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93 대은B/D 5층 ㅣ 대표전화 : 02-733-8024 ㅣ 팩스 : 02-733-8025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0922 ㅣ 등록일자 : 2009년 7월30일ㅣ 발행인 : 김인배 ㅣ 편집인 : 김영인 ㅣ 청소년보호책임자 : 호승택
Copyright ⓒ 2009 환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whantimes.com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