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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발생과 성장
<기고>이공훈 21세기신문화연구회장 '유불선삼교합일사상과 도교<9>
중국 역사상 민중반란의 대부분은 도교에 의해서 주도... 동학혁명도 유사
 
이공훈
Ⅳ. 道敎의 展開

1. 道敎의 發生과 成長

(1) 도교는 후한시대 촉나라 사람 장도릉이 창교한 종교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한대의 찬란했던 영화가 다하고 낙조가 서서히 스며들던 어둡던 시절이다. 통일된 한대에 세상 사람들은 권세 치복 영생의 욕망이 간절하여 무축과 산천기도에 전념하였고 한편 빈곤하였던 서민계급도 면액 발복 탈빈을 원하여 무축기도를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 풍조 속에서 소위 도사라는 인물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기괴한 약품을 만들어 불사영생의 신선에 이르게 해 준다고 세상을 속였다. 널리 진나라 진시황의 예도 있지만 한무제 때 이소군, 소옹 등도 속아 넘어간 대표적 인물들이었다고 한다.

한편 한말에 이르자 관권의 전횡과 부패, 봉건귀족의 서민에 대한 착취, 그리고 지나친 허례허식을 내세운 유교사상 등이 민생고에 시달리는 당시 서민들을 몹시도 괴롭혀 그들의 불만과 반항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성장한 장릉은 병고, 빈고, 압박에 허덕이는 서민을 상대로 민속적 교단을 세웠고 노자의 도덕경을 암송하고 죄과를 참회하며 참회문을 천지신명께 바치도록 하였다.
 
이 교단은 탐관오리가 전횡하던 당시의 관권에 대한 반항을 기도한 반유교적, 반봉건적인 일종의 종교사회를 형성하려는 운동이었으므로 오두미적이라고 불리웠다. 그때가지 노장사상은 사대부계급에서 유행할 뿐이었으나 신선술가 또는 장도릉을 통하여 서민계급에 널리 퍼지게 되고 일개의 현인이요 지자에 불과했던 노자의 존재는 갑자기 신격화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장릉에서 시작되어 차차 그 세력이 커진 도교의 모태인 일명 천사도는 원래 서민적이고 반유교, 반불교적이었으나 교리 확립이 시급해지자 노장철학은 물론이요 유고와 불교로부터 오히려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서 그들의 교리에 유교의 가르침이 첨가되었고 한나라 무제의 신임이 깊었던 도사 도홍경은 유 불 노 삼교에 정통하였다.

그리고 북위에서 구겸지가 출현하여 노자를 <교조>, 장릉을 <대종 >으로 하고 도교라는 명칭을 비로소 부쳤으며 이 사상은 이때부처 도교라고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2) 장릉에 의하여 천사도가 창교되고 이것이 후에 구겸지에 의하여 도교로 발전하였지만 장릉 이전에 이미 그와 유사한 종교적 결사가 형성되었던 중요한 예가 있으니 소위 장각의 태평도이다. 역사 속에서는 황건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황건은 옛 황제시대의 간이한 정치를 찬양하고 유교적인 관권에 반항하는 표지로 사용하였다.
 
간길선인이 신탁에 의해서 얻은 영서 150권의 태평경에서 유래하며 토속종교적이고 반관권적이며 서민적인 점에서 오두미도와 마찬가지로 도교적 저항의식의 발로이었다. 장각과 간길은 오의 손책과 싸우다 살해되고 황건적은 평정되었다. 유교지배권에 대한 도교의 반항으로 한조의 멸망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처럼 장각의 태평도는 평정되고 말았으나 똑같이 구세제민을 표방한 장릉의 천사도는 살아남았다. 초기에는 오두미도라고 불리웠느데 관권에 항거하기는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각이 일으킨 황건적의 난을 피하며 힘을 길렀다. 이리하여 손자 장노 때에 와서 조조와 일전을 결하였으나 마침내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서로 화해하고 장노는 제후에 봉해졌으며 널리 도교를 확산시키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3) 도교가 크게 확장된 시기는 남북조시대로 그 중에서도 북위때였다. 이 시기에 구겸지가 나와 424년에 <녹도진경> 등의 도교에 관한 책을 태무제에게 헌상했으며 신천사도를 국교화하였고 천사도장을 왕명으로 건립하기까지 하였다. 또 황제가 스스로를 태평진군이라 부르고 년호도 같은 이름으로 바꾸고 황제의 몸이면서도 몸소 도단에까지 가서 법록을 받기도 했다 (442년). 태무제 이후 북위의 황제들은 즉위할 때마다 모두 도단에 가서 법록을 받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한다.

(4) 이후 도교는 교리도 확립되고 의식도 정치해지면서 뛰어난 도사들도 속출하여 외관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 당의 현종은 도교의 보호자가 되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원대까지는 곡절은 있었지만 황제의 기호여하에 따라서는 많은 지원이 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명대 이후에는 활력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을 헤메게 된다. 이는 유교가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의연히 정치와 사회의 중심원리로서 기능한 것과 대비된다.

또 불교가 비록 권세를 잃고 후에는 도교와 마찬가지로 타락하고 몰락했지만 그러나 중국인들의 정신세계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무슨 이유로 도교는 성립종교로서도 또 정신적 지주로서도 실패하였을까. 무릇 역사의 잔영으로서 도교의 교단도 남아 있고 민간신앙으로서의 기능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꼭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도교의 역할이 유교나 불교의 그것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도교는 창교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개혁을 그 근본 목적으로 했지 황실의 보호 속에 안주하고자 했던 종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외계층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쌓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잡다한 사상들을 끌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유교건 불교건 선교간 간에 가릴 것이 없었다. 유교신봉자라고 해도 소외계층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건 불교인이건 선교인이건 간에 마찬가지이다.
 
세월이 흐르면 신분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에 반감을 가진 피지배계급에 속한 다수인들을 규합하기 위해 `유불선삼교합일`의 새로운 사상의 출현이라고 부르짖었던 것이지 인간영혼의 구제차원에서 새로운 종교의 출현이라고 부르짖었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후세의 도사들이 구세제민의 근본목적을 잃어버리고 권력에 기생하고자 할 때 이미 도교로서의 생명력은 잃어버렸다고 할 것이다.

둘째, `유불선삼교합일`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유교와 불교와 선교를 합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모순된 말이며 이러한 모순은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그 한계를 노출시키고 말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도교인 자체로부터도 공격 받기도 했겠지만 유교나 불교로부터도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을 것이고 결국 이를 감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삼교를 합일하는 통합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유교인 , 불교인 신선술가, 노장가, 무격(=무속인)으로 분해되어버리고자 하는 원심력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오고 있었을지라도 그 꿈을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잃어버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상류계층에 속하는 도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뿐 하층에 속하는 서민대중들에게 있어서 구세제민이라고 하는 사회개혁의 꿈은 결코 잃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한 꿈은 마치 휴화산처럼 깊고 깊은 곳에 잠복되어 있다가 때가 되면 활화산처럼 지상 위로 거대하게 분출하게 된다.

중국 역사상 민중반란의 대부분은 도교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보면 된다. 홍건적의 난을 일으켰던 명태조 주원장도 그렇고 백련교도의 난도 그렇고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켰던 홍수전도 그렇다. 또 조선에서의 동학혁명도 도교에 의한 사회개혁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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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14 [09:20]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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