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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 > 윤영용의 체험소설 `31move.org 봉황각`
삼각산, 아직 찾지 못한 그 이름
윤영용의 체험소설 '31move.org 봉황각'<5-8> 목요일 삼각산아!
내가 세상을 느끼는 창구가 다 없어지니 세상과 소통하는 나를 찾을 수 있다
 
윤영용
보고 있었다. 나를-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가. 무슨 존재로 어디서 어떻게 왜 살고 있는가. 의식하고 있었다. 분명하게. 누워 있었다.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나를 개가 와서 물가로 끌어올렸다. 사람들이 보였다. 하늘에 별을 본다. 북두칠성. 그 사람들이 나를 살핀다. 거기까지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것과 다른 나를 찾아야 했다-

나는 다른 것과 구별되기 위해 내가 속한 세상과 단절된 나를 찾았다. 그래야 세상과 함께 사는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를 살피면 바로 참 나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먼저, 나는 내 세상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 끊어진 그 순간.
 
보았다. 내가 세상과 연결된 것들. 정확히는 내가 세상을 느끼게 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내가 세상을 느끼는 창구가 다 없어지니 세상과 소통하는 나를 찾을 수 있다. 뜻밖에 쉬웠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랬다.

여구는 죽음 직전,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는 공부.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다. 감각기관들이 다 멈춘 것 같았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구 자신이 세상을 느끼는 것의 원류인 오감은 곧 참 나가 세상을 느끼는 창구다.
 
이들 감각 기관들은 곧 세상을 향해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시각이 없어지니 보이는 것이 없어지고, 청각을 없애고 나니 들리는 것도 다 없어진다. 그리고 후각도 미각도 촉각마저 없어지니… 세상이 없어지고 오직 나만 남는다. 이걸까?
 
그럼 세상은 어디 있는가. 내 세상. 아니 형 여강의 세상. 죽은 어미 우아의 세상. 죽은 사람들의 세상은 어디 있는가. 아니다. 산 사람들의 세상은 어디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근초고대왕] 소설에 쓰여있던 그 느낌이 다가왔다. 그 수련. 죽음을 넘어선 느낌.

그들-

수련을 마친 후 전국 방방곡곡의 임지로 돌아가서 자신들이 수련한 내용을 관내의 교인들에게 철저하게 전달 교육을 하게 했다. 백절불굴의 의지와 신앙심이다. 그것으로 독립운동에 임할 수 있도록 정신무장을 갖추게 한 것이다. 300만 명의 조직적인 3·1운동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직전, 3차례에 걸쳐서 49일간씩 조국광복을 위한 특별기도가 300만 명에게 행해졌다.

우연인가-

아니다. 철저히 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3·1운동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만세시위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3·1운동 직후부터 연해주 간도와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 봉황각에서 483명의 천도교 지도자들을 수련시킨 결과였다. 조직적이고 긴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각산, 아직 찾지 못한 그 이름-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도 삼각산이 지닌 면모와 의미를 예사롭지 않게 여겼던 것인지, 아니면 봉황각의 수련을 수상히 여겼음인지 일반 민간인도 거주하지 않고 군인도 없는 곳에 일본 헌병대를 주둔하게 하여 삼각산을 점령하였다. 우리의 의병이나 독립군이 삼각산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는 것을 우려한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북한산성 안에 있는 시설 대부분과 사찰을 불태웠다고 한다.

1927년에는 민족정기를 훼손하려 백운대에 쇠 난간을 설치하고 철심(鐵心)을 박았다. 그러나 광복이 된 35년이 지나서 1980년대에 그때 박았던 철심을 모두 찾아 철거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이름만은 못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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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19 [10:07]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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