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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 > 윤영용의 체험소설 `31move.org 봉황각`
"천년은 갈 수 있을 것... 아니 오백년!"
윤영용의 체험소설 '31move.org 봉황각'<5-6> 목요일 삼각산아!
도선의 예지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삼각산 모습이 보이니"
 
윤영용
도선국사-

산에 기도처를 정하여 도선암이란 초가(草家) 암자를 짓고 지극한 정성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갈 새 나라가 일어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감응이 있어 남쪽 봉우리에 올라서서 살펴보니, 송악, 지금의 개성 일대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장차 도읍이 될 대명당(大明堂)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이름 하여 '나라를 바라보았다.'라는 뜻으로 국망봉(國望峰)이라 하였다.

도선은 왕건의 부친 왕융을 만나 새 왕조 출현을 암시했다. 솔깃한 왕융은 매우 기뻐했다.

“새 왕조가 얼마나 갈 수 있겠습니까?”

“천 년은 갈 수 있을 것…. 아니 오백 년이오!”

“왜 그러십니까?”

“저 송악산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삼각산의 모습이 보이니….”

“예?"

“아, 아니요. 삼각산에 막혀 500년 가오리다.”

고려(高麗)는 474년 만에 멸망해 한양에 도읍지를 넘겨야 했다.

삼각산은 고려 시대에서부터 이미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서희전(徐熙傳)에 의하면, 서희가 성종에게 아뢴 말 중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이라고 한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삼국시대 이래 부아악이라고 불리어 오던 산 이름이 고려 시대부터 삼각산으로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확고히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북한지] [대동지지] 등의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모두 한결같이 삼각산(三角山)으로 기록하였고,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三)개의 뿔(角)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삼각산은 당시 개성의 송악산 맞은 편 하늘에 높이 솟구쳐 보여서 그 상징성이 돋보이게 되었고 주변의 지명이나 풍속 등 우리 민속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삼각산의 세 봉우리가 이루고 있는 그 모양이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세 뿔'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세 뿔'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삼각산'이나 '서울'의 어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세 뿔'을 한자(漢字)로 쓰면, 세(서) → 삼(三)과 뿔 → 각(角)이 되어서 '삼각산'(三角山)으로 되고, '세(석 서)뿔'이 '셔불(세불)' = 불 = 울 곧 '서불 → 서울'로 됐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서라벌'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로서 '수도'의 의미가 있었다고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세뿔'이라는 보통명사가 '삼각산'이라는 고유명사로 변형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고, 거리를 보아도 신라의 '서라벌'보다 '세뿔'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오늘 우리가 부르는 '서울'의 어원이 바로 삼각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과 함께 우리 민족이 즐겨 쓰는 삼(三)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대개 천(天)지(地)인(人)으로 구성되는 삼재(三才)와 연관되고 있다. 또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풍속에서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三神)할머니라는 말 역시 이 삼각산의 천지인(天地人) 세 봉우리와 더불어 아기를 업은 엄마 산(負兒岳)과 출산(出産), 산신(産神) 등의 의미와 들어맞아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삼각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등 대부분 조선 시대 지리서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화산(華山) 화악(華岳) 또는 중악(中岳)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는 삼각산의 별명으로서 삼각산이라는 본명과는 구별된다.

북한지(北漢誌)에서는 “삼각산은 인수봉(仁壽峰), 백운봉(白雲峰), 만경봉(萬景峰)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서서 깎아 세운 듯한 세 뿔과 같다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데, 일명 화산(華山) 또는 화악(華岳)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중화(中華) 라고 자칭하는데 이것은 자기네 나라가 세계적으로 중심이 되고 기운이 결집하여 꽃 같이 피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방(四方)의 중심(中心) 또는 기(氣)가 최종으로 결집(結集)되어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상징하여 화산, 화악 또는 중악(中岳)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 양성지(梁誠之)가 금강산을 동악, 구월산을 서악, 지리산을 남악, 장백산을 북악, 그리고 삼각산을 중악으로 삼자는 진언을 하였는데, 이것은 화악(華岳)의 다른 이름으로서 동서남북의 구심점이 되는 즉, 전체의 구심점과 중앙이 된다는 뜻으로서 지기(地氣)가 결집하고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화산은 대개 도읍지의 진산(鎭山)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산(火山)이라는 이름은 화산(華山)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서, 조선에서도 삼각산을 대한반도의 구심점(求心點)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진흥왕 16년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彊域)을 획정(劃定)하였다.'라고 한 기록이나, 비봉(碑峰)의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북한산주(北漢山州)'라고 새겨진 것 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 14년(BC.5)에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의 한산마을을 '북쪽 한산'이란 의미로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어 마을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북한산'이 고려 시대부터 천여 년간 사용해온 '삼각산'이란 본래의 산 이름을 제치고 일반화된 것은 1915년에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을 지낸 금서룡(今西龍)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는 삼각산의 유적을 조사하고 그 보고서의 명칭을 "경기도 고양군 북한산 유적 조사보고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산은 경성의 북방에 솟아 있는 조선의 명산으로, 이 산은 일명 삼각산으로도 일컫고 달리 화산 또는 화악이란 이름도 있다.'라고 기록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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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05 [09:55]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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