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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 > 황천우의 연재소설 `매화와 달`
삶의 종착지를 찾아
황천우의 연재소설 '매화와 달'<56> “귀신이 함께 한다고요?”
 
황천우
설잠이 부여의 무량사를 찾았다. 곁에는 선행을 따르던 떡두꺼비 같은 만득이 함께 하고 있었다. 중흥사를 떠나는 설잠을 한사코 따라붙으려는 선행을 제치자 선행이 평소 자신을 따르던 젊은이, 만득으로 하여금 스승 설잠을 수행하도록 했다. 흡사 자신을 설준 스님에게 보낸 것처럼 말이다.

설잠이 초입에서 저만치 보이는 무량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나온 길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니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이 바로 어제의 일만 같았다.

아스라이 펼쳐져 있는 그 길을 바라보자 얼마 전 중흥사에 거처할 때 사가독서를 끝내고 다시 조정으로 드는 김일손과 함께 남효온을 배웅했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의 삶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인지한 남효온이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고 그예 설잠에게 인사 겸해서 들렸다. 죽음을 앞 둔 여행, 다시는 이승에서 만날 수 없다는 착잡한 마음에 그를 맞이했다.

“선배님, 이제는 선배님을 뵐 수 없겠지요.”

“추강은 그 무슨 소리를 섭섭하게 하는 게요.”

“그 마음은 제가 더 크옵니다.”

“그게 아니지요.”

“아니라 이르시면.”

차마 유체이탈을 해서 설준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산 사람의 경우 먼저 죽은 사람에게 는 함께할 수 있지만 나중에 죽은 사람에게 먼저 죽은 사람은 함께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말할 수 없었다.

“나의 마지막을 보아야하지 않겠느냐 이 말입니다,”

“선배님, 그거 보면 확실히 귀신은 있는 모양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올 때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럼 추강은 그것이 귀신의 장난이라는 이야긴가요?”

“하오면 그것이 아닌지요.”

“귀신이 뭐라 했소?”

“물론 기의 변형된 형태를 이름이지요.”

설잠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렇다면 추강의 말이 맞는구려.”

설잠이 답을 하며 미소를 보이자 남효온이 은근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선배님, 짓궂으십니다.”

“짓궂은 것이 아니라, 내 너무 섭섭해서 그래요.”

“그리도 섭섭하십니까?”

“그러면 추강 같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소.”

“너무 심려 마십시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선배님의 가르침을 정리할 것입니다. 아울러 선배님의 가르침을 후세에 길이길이 남기도록 만반의 조처를 취할 것입니다. 또 여기에 있는 김일손이 있지 않습니까.”

남효온이 곁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김일손을 바라보았다.

“김군.”

설잠이 은근하게 김일손을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스승님.”

“추강이 가고 나면 나도 떠나려 하네.”

“네!”

“일전에 내가 좋은 장소를 보아두었어. 내 삶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장소 말이야.”

“하오면 스승님도 작별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당연한 일 아닌가.”

“두 분 너무 하시옵니다. 저를 홀로 남겨두고......”

“홀로가 아닐세. 그래, 외형으로는 물론 혼자지만 우리는 혼으로 이미 하나가 된 입장 아닌가. 그런 경우라면 굳이 따로라 할 수 없는 일이지.”

“그건 선배님 말씀이 옳네. 어차피 이승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바 누가 반드시 곁에 있고 없고는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줄 수 없는 일이네. 우리의 귀신이 의기투합되어 있으니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라네.”

“귀신이 함께 한다고요?”

“그래. 그리고 그 귀신이 영원히 이어지고 말이야.”

김일손이 더 이상 반구하지 않았다.

“자, 그럼 우리 이렇게 하세.”

갑작스런 설잠의 제안에 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선배님, 어떻게 말인지요.”

“오늘 우리 귀신주를 마시자 이 말이요. 그리고 서로의 길을 갔다가 다시 귀신으로 다시 만나면 될 일이고 말입니다.”

“참으로 현명한 처사이십니다, 선배님.”


설잠이 고개를 돌려 무량사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이곳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었다. 길지 않았던 삶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곳에서 정리해야 할 듯했다.

“스님, 저곳이 아니옵니까?”

설잠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만득이 기어이 입을 열었다.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냐.”“스님이 가시고자 하는 절이 저 곳이 아닌가 하는 말씀이옵니다.”

오랫동안 상념에 잡혀 있었으니 그리 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곳이 맞으니 어서 길을 잡도록 해라.”

만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량사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절의 모습이 황량했다. 불교에 대한 탄압의 흔적이 그곳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씁쓰레한 마음이 일어났다.

“스님,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절인 모양인뎁쇼.”

“이놈아, 아무도 거주하지 않다니. 그러면 우리는 뭐란 말이냐.”“우리는 우리고 이 절은 절 아닌지요.”

설잠이 만득의 엉뚱한 답변에 그냥 실소만 흘렸다.

“여러 소리 하지 말고 지금부터 정리하도록 하거라. 우리가 여기에 터를 잡을 것이니.”

“스님, 이곳에서 무엇을 할 건데요?”

“허 허, 그 녀석 말이 많구나. 너는 그저 내 이르는 대로만 하면 되느니라.”

만득이 저도 질문은 해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뒤통수를 긁었다.

“만득아, 이놈아. 그리도 궁금하냐.”

곤혹스럽게 변해가던 만득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당연하지요, 스님.”

“내 이야기해주마. 이곳에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누항(陋巷 : 너절한 삶)을 정리하고 새롭게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그러니 열과 성을 다해서 정리하도록 해라.”“스님, 새롭게 여행을 떠나신다면서 정리를 깨끗이 하면 뭐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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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25 [10:04]  최종편집: ⓒ 환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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