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민족선도민족역사민족종교민족무교민족역학민족문화 로그인 회원가입 환타임스에 바란다 후원하기
뉴스일반칼럼기획물같이 바람같이민족언론동맹靈性동아리동맹환포터통신 환토방 바로가기
편집: 단기 4350.09.26 14:00 (서기 2017)
물같이 바람같이
강현무의 우리문화 X파일
권영준의 인체삼육도 원리
권영준의 하늘말·하늘글·하늘법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김용성의 태극한글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김주호의 얼 말 글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박민찬의 도선 풍수
박상근의 웰빙 풍수
박용규의 주역원리 탐구
반재원의 우리 희망 토종약초
서상욱의 주역 산책
성미경의 하늘그림궁
소윤하의 穴針뽑기 대장정
이공훈의 道敎탐색
이용범의 한국陶瓷 탐험
이훈섭의 단군제영한시 되보기
정진중의 씨알 교육
조성제의 무교 生生之生
조옥구의 한민족과 漢字 비밀
조옥구의 한자 실전인문학
회원가입
환타임스에
바란다
후원해주세요
기사제보
HOME > 물같이 바람같이 >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개천절 역사를 바로 세우자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開天은 기원전 3897년 환웅천왕의 신시 건국
한민족 역사에 대한 일제의 날조와 한국사학계의 동조는 가공할 국제범죄
 
김종호
개천(開天)이란?

우리 역사에서 기원전 3897년에 환인천제로부터 ‘홍익인간’의 소명을 받은 환웅천왕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정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 배달국을 세우신 역사를 개천(開天)이라고 한다.


문헌고증

고려말 행촌 이암선생께서 편찬하신 ‘단군세기’의 1세단군 왕검조에

<개천 1565년 (BC2333년) 10월 3일 오가의 우두머리인 신인왕검(神人王儉)께서 8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박달나무 터에 당도하여 삼신께 제사를 올리고 다스림을 여니 온 백성이 기뻐하여 성심으로 따랐고, 환인천제의 화신이라며 임금으로 추대하여 단군왕검으로 불렀으며, 단군께서 신시의 옛 법을 되찾고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국을 세우셨다>고 한다.

즉, 10월 3일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일이고 개천은 이보다 1565년 전의 일인 것이다. 
 

시대적 모순

그런데도 현재 우리는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기념하면서 또 개천절은 단군께서 고조선을 건국한 날이라고 하여 개천과 조선건국을 하나의 역사로 통합시킴으로써  단군조선의 선대인 1565년간의 역사를 축소시키고 있으니 이것은 시대적 모순이자 우리 스스로의 역사 왜곡이 아닌가! 
 

국사회복

바로잡는다면, 10월 3일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로 정의하고 ‘개천’이란 용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개천절은 환웅이 홍익인간을 이루기 위해 오신 날로 정의하여 따로 기념하여야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될 것이다. 다만 개천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삼국유사, 단군세기, 태백일사삼성기등 문헌에 환웅천왕이 내려오신 날자가 밝혀져있지 않은 것이 난점이다.

이를 바로잡기 전에 먼저 부득이 현재의 개천절을 유지해야 한다면 개천절은 단군왕검께서 환인천제와 환웅천왕의 <개천과 홍익>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국을 건국한 기원전 2333년 10월 3일, 바로 그 날을 우리 후손들이 경축하고 계승하는 엄숙한 민족역사의 제전이라고 정의하여 고조선의 건국 사실도 함께 경축하되 민족 역사의 첫 장인 개천과 홍익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위 아래를 바르게 갖춰야 할 것이다.

태백의 의미

더불어 홍익으로 민족의 첫 유사시대를 연 장소인 태백 역시 민족의 역사와 혼을 되찾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슴을 간과 할 수 없다.

태백(太白)이란 모든 색깔을 포함하는 최초의 흰빛으로 평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빛은 만물에 평등하게 작용하여 물과 더불어 생명의 원천인데 모든 색깔이 평등하게 함께 존재할 때 만이 흰색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단군세기’의 11세단군 도해(道奚) 조에는 <성통광명性通明-재세이화在世理-홍익인간益人間>이라는 천지인 합일의 이념체계를 제시하여 빛(光)으로 통하는 우주만물의 성품이 사람세상의 홍익에 이르게 됨을 천명하였고, 대한민국의 관문인 세종로의 광화문(光化門)까지 빛의 철학이 계승되어 있다. 한편 한민족의 대명사인 백의(白衣)민족이라든지 고대의 정치제도인 화백(和白)에도 흰 빛의 본질인 평등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슴은 물론이다.

따라서 홍익이 태백에서 발현됐다는 역사의 기록은 바로 홍익이 평등정신에서 비롯됨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의 인본주의

16세기 전후 신권주의(神權主義)에 질식된 인간성 회복을 위해 보다 인간적인 학문과 예술을 외친 인본주의(Humanism)가 유럽 최초로 등장했고, 이어 1648년 영국의 청교도혁명, 1775년 미국의 독립혁명,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등 세계 3대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비로서 인권 평등을 외치게 되는데 프랑스 대혁명에서 내세운 파랑 하양 빨강의 삼색 깃발이 자유 평등 박애를 나타내고 있으며 오늘날 프랑스의 국기가 되었슴은 주지의 사실이다.


홍익은 인류사 최초의 인본주의

이에 앞서 일찍이 동방의 한 나라가 기원전 3897년에 평등을 상징하는 태백에서 인간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을 주창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홍익이 인류사 최초의 인본주의 선언이며 글로벌 평화정신이라는 자랑스러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또한 실천하여 21세기 세계평화에 앞장 서야하는 사명을 지닌 민족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홍익의 실종

그러나 이렇듯 자랑스러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개천과 홍익은 반복되는 국난의 소용돌이 속에, 외래 종교와 사상의 난입으로 질곡(桎梏)에 빠져 본래의 자리를 잃고 말았으니 곧 우리의 주체성이 실종되고 만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의 신도가 총인구의 절반을 넘고 뿌리깊은 유교와 도교의 신봉자 또한 적지 않다. 여기에다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학계는 고구려 이전의 고대사를 실체없는 공백으로 비워둔 채, 환인과 환웅의 역사는 물론 단군조선의 실체마저도 부정하면서, 오히려 우리의 국사회복운동을 국수주의로 매도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글로벌 시대에 맞춰 민족이란 개념은 해체되어야 한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이 제자리를 찾을 날은 정말 요원한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머지않아 저들이 <자기 것을 잃는 것은 곧 주체성을 잃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시간의 문제일 뿐 진리의 중심과 민족의 혼은 절대 흔들리는 법이 없다고.
 

국제적 범죄

우리 고대사가 일제에 의해 말살 또는 축소 왜곡되었다는 것은 한국인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자 일본인들이 저지른 명백한 국제적 범죄이다.

정부와 현 사학계는 당연히 이 범죄행위를 바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으며 또한 그 범죄가 일제 강점시기에 벌어진 일이므로 근대사의 한 과정으로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타국에 의해 훼손된 국사의 회복은 선조에 대한 후손의 도리임은 물론 국가성립의 최우선적 요건이며 국가의 만년대계를 위한 후세 교육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역사 날조의 핵심

축소 왜곡된 역사의 대표적 핵심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규정짓고,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 연나라 사람인 위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손자 우거가  중국 한나라의 무제에게 멸망된 BC108년을 기점으로 잡고, 이 때 설치했다는 한사군을 대동강 이북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킨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민족 국가체계의 정통성을 짓밟아 민족의 혼이 증발되고, 타국인에 의해 정복된 첫 역사를 교육함으로써 민족의 자긍심을 상실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국토 인식의 일대 혼란을 초래하여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락, 대진국 등 후세 국가에 대한 성립 여건 및 존재성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가깝게는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에 까지 파급되었을 정도이다.
 

단군신화론에 동조한 한국사학계

그러나 해방이후 우리 사학계는 일본이 내세운 단군신화론에 동조하였고, 한사군을 저들의 논리로 가르쳤으며 지금도 위만이 실체적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일본의 국제적 범죄를 단죄해도 모자랄 한국사학계가 해방 이후 65년 동안이나 저들의 사관을 이어왔으며, 위만 이전의 한국사는 공백으로 비어두고 있는 것이다.

만약 현재의 우리 사학계와 한국의 역사학자들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에게는 위만 이전의 조상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단군조선도 존재하지 않고 환웅의 개천과 홍익마저도 일체 부정되어야 할 것이며 개천절 또한 일종의 역사놀음에 불과 할 것이다.
 

범죄방조 및 직무유기

그러나 위만 이전에 우리의 조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할 리 없고, 또 그 시대에 우리의 국가가 없었다면 이미 중국이나 타 민족의 지배를 받았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기에, 위만 이전의 역사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사학계는 ‘일본이 저지른 범죄’의 방조와 더불어 사학에 맡겨진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국가의 기강을 흐트리고 후세 교육을 버려놓은 직무유기의 책임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정부와 국민이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민족사서의 존재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외세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다고는 하지만 위만 이전 몇 천년 간의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어떤 경우든 제 조상의 역사를 팽겨칠 후손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인이 불온서적으로 수거하여 불태운 책이 51종 20여만권이라고 해방 직후의 ‘제헌국회사’가 밝히고 있지만, 그 국난 중에도 많은 민족사서들이 존재하여 민족 혼을 일깨우며 독립투쟁 의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민족사서로는. ‘단군세기(행촌 이암편찬)’ ‘태백일사(이맥편찬)’ ‘삼성기(안함로, 원동중편찬 2종)’ ‘북부여기(범장편찬)’ ‘단기고사(대야발편찬)’ 등이 전해져 오고있다.
 

가공할 식민사학

그러나 한국사학계는 그동안 이 문헌들을 일체 배격하면서 한국 역사를 날조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내세웠던 이른바 실증사학이라는 억지논리를 펴거나, 독립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위작된 것이라고 일축하여 왔다. 이는 위 문헌들을 편찬한 많은 선조 문인들을 주제넘게 희롱하는 짓이며, 일본인보다 더 가공할 만한 역사적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생각이다.

그리스나 로마나 이스라엘이나 가깝게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서적도 실증된 것이 아니며 승리한 왕조가 꾸며내든지 구전을 문자화하든, 선대로부터 전해져오는 것이 역사를 이루고 되며, 후대의 학자에 의해 실증을 요구받거나 실증의 잣대로 희롱 받는 일도 없으며, 후손은 다만 연구의 자세를 넘지 말아야 한다. 
 

10월 3일의 근거

지면 관계상 한가지 예로써 논지를 피력하여 보자. 10월 3일을 개천절로 지정한 것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가? 10월 3일과 ‘개천’에 대한 기사는 분명 현 사학계가 우리국사의 정사로 삼고 있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없고 유일하게 본 원고의 서두에서 밝힌 단군세기의 1세단군 왕검조에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기록에서의 ‘1세단군’ 부분이나 개천 1565년에 조선국을 세웠다는 부분도 인정해야지, 어찌 10월 3일과 조선건국 부분만 쏙 빼서 인정됐단 말인가. 아니 현 사학계는 그들이 수용하지 않는 단군세기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정할 것이 아니고 아예 10월 3일을 개천절로 지정한 정부의 국경일 정책을 거부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상과 같이 우리 역사의 첫 장인 개천이 ‘고조선 건국일’로 왜곡되어 있지만 정부의 무지와 사학계의 비겁한 침묵에 의해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가 축소 왜곡되어 있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은가!

보라. 경술국치 100년을 맞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일본은 청소년들에게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적반하장으로 한국이 강점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환(桓)타임스

요컨데 어느 민족에게나 자결권이 있어 자기네 시각에 의한 고대사를 정립할 권리가 있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제한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해방 이후 65년 동안 많은 재야사학자들이 한민족 고대사의 복원을 꾀했지만 식민사학과 사대주의 사학의 벽에 부딪쳐 여지껏 뿌리없는 역사만을 안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우리의 국사회복이 환(桓)시대 즉, 환타임스를 복원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으며 오직 환타임스의 첫 장인 개천과 홍익을 바로 세움으로써만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성토나 구호를 외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년중에 ‘개천절 주제의 세미나’와 ‘개천절 청문회’를 국회 안의 한 장소에서 개최하는 것이 지름길이라 생각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 국사편찬위원회, 각 종교단체, 민족단체, 사회단체, 언론인 등 각 계의 인사들을 초빙하여 의견을 종합한다면 우리 국사의 회복을 위한 길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하며 환타임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당부드린다.
 

개천과 홍익 그 영광을 안으라!

아득히 먼 옛날 하늘이 열리고 동방 환족에 의해 인류사 최초의 인본주의인 홍익이 주창되었으니 이른바 신시개천의 태평지세요 환타임스의 흥업이다.

인간이 하늘의 뜻에 따라 누구나 다 평등하니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서로 도와 이롭게 하고, 베풀고 나누어 영세 평화를 누리라! 이것이 개천의 참 뜻이요 홍익이다! 

홍익5907년 개천절을 맞아.[김종호 한민족포럼(VIVA KOREAN) 의장]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10/02 [09:24]  최종편집: ⓒ 환타임스
 
개천의 의미 정발장군 10/10/04 [15:29]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개천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단군의 역사와 상고사를 먼저 회복한다면 한웅할아버지의 뜻을 바로 세울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정부가 관심을 가질수 있도록 국민들이 많이 참여하는 대축제의 장으로 만드는것이 선행되어야 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좋군 10/10/06 [21:18] 수정 삭제
  어느정도 알고 있었는데 아직 우리의 상고사가 완전히 정립이 안된 결과라 봅니다. 이제는 상고사를 신화로 취급하는 무지를 타파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을 해야 겠습니다. 수만의 지원군이 있습니다.
역사, 바로알고 바로세우기..... 천사자 10/10/08 [21:25] 수정 삭제
  개천절의 정확한 연도를 바로잡는일과 더불어 천손이라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고려사와 이씨조선사를 다시 평가하는 일이 병행되어야합니다. 일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이 천손임을 정면으로 부정한 상징물인 광화문을 민족의 정문으로 할수는 없는것입니다.홍익인간이 반상의 문화나 남존여비사상에서 나오는것은 아니지요. 치욕은 치욕대로 영광은 영광대로 구별하는 일부터가 역사바로세우기입니다.
진정한 개천의 의미 천진궁 11/09/17 [21:36] 수정 삭제
  하루빨리 사대식민사관에서 벗어나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의
뿌리인 개천절을 온국민이 즐거워해야할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개천절에 참석하도록 합시다
기원전이란 용어 이광원 14/02/22 [06:33] 수정 삭제
  모든 사람은 BC를 기원전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은 잘못된 것입니다. 서기전이라고 표현하여야 합니다. 기원전을 서기전으로 바꾸어 표기를 하십시요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물같이 바람같이
강현무의 우리문화 X파일
권영준의 인체삼육도 원리
권영준의 하늘말·하늘글·하늘법
김규순의 풍수보따리
김용성의 태극한글
김종호의 홍익글로벌 敍事
김주호의 얼 말 글
노중평의 우리 별 이야기
박민찬의 도선 풍수
박상근의 웰빙 풍수
박용규의 주역원리 탐구
반재원의 우리 희망 토종약초
서상욱의 주역 산책
성미경의 하늘그림궁
소윤하의 穴針뽑기 대장정
이공훈의 道敎탐색
이용범의 한국陶瓷 탐험
이훈섭의 단군제영한시 되보기
정진중의 씨알 교육
조성제의 무교 生生之生
조옥구의 한민족과 漢字 비밀
조옥구의 한자 실전인문학
최근 기사 클릭 베스트5
  환타임스 소개만드는 사람들광고문의제휴문의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오시는 길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93 대은B/D 5층 ㅣ 대표전화 : 02-733-8024 ㅣ 팩스 : 02-733-8025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0922 ㅣ 등록일자 : 2009년 7월30일ㅣ 발행인 : 김인배 ㅣ 편집인 : 김영인 ㅣ 청소년보호책임자 : 호승택
Copyright ⓒ 2009 환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whantimes.com for more information.